한희원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
한희원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

증권회사 광고가 아니다. “미래에는 애(아기)셋을 낳자!”는 구호이다. 포항공과대학 정진호 교수가 경상북도 화요일 공부 모임인 화공에서 일깨워 준 경구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세계 최고의 저출산율 국가가 되었다. 출생률 감소와 인간수명의 급속한 증가라는 2가지 메가트렌드로, 인류는 이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혼돈의 사회로 진입 중이다. 2018년에 지구상에는 64세 이상 노년층 비율이 5세 미만 비율을 최초로 뛰어넘었다. 저출산 초고령화는 세상 모든 곳에서 무서운 속도로 진행 중이지만 대한민국에는 태풍급이다.

지난 3일 한국은행은 저출산율을 끌어올리지 못할 경우, 2050년께 성장률이 0% 이하로 추락하고 2070년께 총인구가 4천만 명을 밑돌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11일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의 ‘개구리 한국경제’ 보고서는 노령인구 증가와 출생아 감소 등으로 인한 인구구조 불균형 가속화를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기로 꼽았다. 한편 한국은행보고서는 “정책적 노력으로 출산을 약 0.2명만 올려도 잠재성장률은 평균 0.1% 높아질 수 있다”라며 출산을 호소한다. 하지만 이 같은 이성적인 저출산 대책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출산을 0.2명만 올리자는 구호에 어떤 젊은이가, 어떤 사업주가, 어떤 부모가 솔깃할 것인가?

금적금왕(擒賊擒王)이라는 말이 있다. 적을 이기려면 우두머리부터 때려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본질에 뛰어들어 핵심을 꼬집을 때, 즉 최고를 목표로 삼을 때 조그마한 성과라도 이룰 수 있다는 경구이다. 구호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뇌리에 오랫동안 남는 충격파이다. 구호는 비전을 제시하기도 한다. 현재의 저출산 책상머리 대책은 아무리 내용이 절실해도 울림이 부족해 보인다. 애 셋 낳자는 “미래애셋”이 훨씬 울림이 크고, 실행 동기를 부여할 듯하다. 그러다 보면 한 명은 출산하고 두 명을 시도하는 부부도 많아질 듯하다.

원래 우주에서 “3”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3은 가정에 만복을 가져다줄 축복의 숫자이다. 지구는 태양계의 3번째 행성이다. 인생은 과거·현재·미래로 3등분하고, 하루는 오전·오후·저녁으로 3분한다. 또한, 동서양을 막론하고 3은 완벽의 상징이다. 하나는 불완전하고 둘이면 대립할 수 있으나 숫자 ‘3’은 안전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이나 신화에 숫자 ‘3’이 빈번히 등장한다. 성서에서의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이다. 예수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세 가지를 강조하였다. 그리스 신화 속의 제우스(Zeus)는 천하를 3등분하여 자신은 하늘을, 하데스(Hades)는 지하세계를, 포세이돈(Poseidon)은 바다를 다스렸다.

이렇게 위대하고 완전한 의미를 지닌 숫자 ‘3’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속담이나 유행가 가사에도 등장한다. 만세도 세 번 불러 만세삼창이라 하고, 최진사댁은 딸이 셋이고, 아기 돼지는 삼형제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고,’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등 숫자 ‘3’은 우리 생활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있다. 사람은 아침, 점심, 저녁 3끼를 먹는다. 삼권분립은 국가권력을 입법, 행정, 사법으로 나누어 분담하는 것이고, 육군, 해군, 공군을 가리켜 3군이라고 부른다. 마침내 우리가 사는 보금자리는 2차원 평면에 공간을 더한 3차원 세계이다. 3차원 세계에서 ‘애셋’은 너무나 잘 어울리지 않는가?

2024년은 갑진년 용의 해이다. 용을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점을 찍어 눈동자를 그리는 것을 “화룡점정”이라고 한다. 모든 저출산 대책의 화룡점정 구호로 “미래애셋”이 딱 맞아 보인다. 미래애셋 비전으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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