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림 국립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신호림 국립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립안동대학교 해양문화연구원이 올해 초에 개원했다.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해양문화자원과 해양문화콘텐츠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거점 기관의 필요성이 경상북도 차원에서 제기되었고, 국립안동대학교 해양문화연구원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개원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포항 지역 어촌계를 중심으로 해양문화자원에 대한 현지 조사 및 문헌 조사가 진행되었다. 필자는 그 중 포항 어촌 마을의 ‘전설’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다. 전설은 ‘증거물’과 함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증거물은 주로 산, 돌, 나무 등 마을의 자연물인 경우가 많다. 왜 산의 모양이 저렇게 되었는지, 저 큰 돌은 어떻게 지금 그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는지, 예전에 어떤 종류의 신비한 존재들이 나무에 내려와서 놀고 갔는지 등 비현실적인 소재로 가득 차 있지만 전설은 마을 사람들에게 사실인 것처럼 꽤나 진실성 있게 이야기된다. 그래서 전설은 단순한 유희의 산물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바라보는 어촌 마을에 대한 다양한 인식을 담아내고 있다.

물론, 오늘날 전설을 포함해서 이야기의 향유는 활발하지 않다. 예전에는 마을회관이나 누구네 집에서 함께 모여 이런저런 마을의 전설을 들을 수 있는 ‘이야기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판이 하던 역할을 교육기관과 대중매체가 대신하게 되면서 전설에 대한 기억은 희박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현장에 나가보면 파편적으로나마 전설의 내용을 기억해내고 필자에게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그런 사람들을 찾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포항의 어촌 마을에서는 ‘바위’나 ‘돌’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용이 머물던 바위 또는 용이 올라와서 변한 바위에 대한 전설, 거대한 여성 거인이 직접 옮기고 던졌다는 큰 돌에 대한 전설, 그런 거인이 만들었다는 주상절리나 산성(山城)에 대한 전설 등등.

흥미로운 점은 전설의 ‘증거물’인 바위나 돌을 직접 사진에 담으려고 그 위치를 수소문하다 보면 이미 사라졌거나 훼손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점점 인구가 줄어들고 자생적인 생업 환경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어촌 마을을 살리기 위해 지자체의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는데, 그 일환으로 어촌 마을을 위한 개발 작업이 진행되던 중 마을의 전설이 깃들어있는 돌이나 바위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 이미 파괴되었거나 새롭게 지은 건물 뒤편에서 겨우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예컨대, 포항시 북구 송라면 조사리에는 수용암(龍巖)이 남아있다. 이 바위에는 부부 용과 관련된 전설이 남아있다. 남편 용이 변한 바위인 수용암은 본래 아내 용이 변한 바위인 암용암과 쌍을 이루고 있었지만, 포항에 해안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암용암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현재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고, 수용암 또한 머리 부분 중간부터 부서져서 그 형상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조사리의 해녀로 활동하고 있는 한 제보자는 수용암이 여의주를 물고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마을에 복이 많이 들어왔었는데, 암용암이 사라지고 수용암마저도 반 이상 파괴되어서 더 이상 마을이 발전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계속 발견된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용한1리에는 용대가리 바위가 있다. 필자가 만난 횟집 사장 부부의 증언에 따르면, 용대가리를 중심으로 용한1리를 거대한 용이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이 평안하고 복이 넘쳤었는데, 이제 거대한 건물이 용대가리를 가리면서 그 영험함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용대가리 바위를 찾아가 보니 3~4층 되는 건물 뒤편에 감추어져 있는 형국이었고, 돌이 많이 깎여나가서 용의 머리 형상을 잃어간 채 방치되어 있었다. 어촌 마을을 위한 개발 작업이 오히려 어촌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고 믿었던 바위나 돌과 같은 자연물을 훼손하고 있는 셈이다.

어촌 마을의 인프라를 보강하고 관광객의 방문을 유도하기 위한 개발은 불가피한 것일 수 있다. 그런 개발의 과정을 통해 포항의 어촌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개발을 기획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은 기존의 어촌 마을 사람들이 삶의 일부분으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자연물의 보존에 대한 것이다. 개발 과정에서부터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촌 마을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사람들의 다양한 인식을 담아내고 있는 자연물과 그 자연물에 깃들어 있는 전설이나 신앙을 등한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개발과 보존, 이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길항적인 것이 아니며, 보존하며 개발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앞으로 어촌 마을을 개발할 때 선행되어야 할 것은 개발의 효율성과 기대효과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소중히 여겼던 자연물에 대한 조사와 이에 대한 보존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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