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1986년 1년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UCLA 소아혈액종양분과에 연수를 갔었는데 이 대학 내에는 의학유전학교실이 없었고 염색체 검사도 이뤄지지 않아서 Feig 교수(초청교수)에게 허락을 받고 그 기간 중에 애리조나 주에 있는 투산(Tucson)시의 ‘애리조나 주립대학 암센터’의 세포유전분과에 2주간 다녀왔다. 자동차로 피닉스를 경유해서 480마일, 8시간 걸리는 거리로, 원래는 오전에 출발해서 저녁에 도착하기로 예정했었다. 지금처럼 내비게이션이 없었던 관계로 ‘AAA’ 여행사에 찾아가 필요한 지도와 도착지 상황에 대한 책자를 준비하였고 모텔 예약을 하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뉴욕에 연수를 갔다가 LA를 거쳐 귀국하는 동기가 그 날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반갑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공항에 픽업을 갔었고, 디즈니랜드까지 구경을 시켜 주고, 저녁도 먹이고, 비행기장까지 전송하고 나니 저녁 10시가 되었다. 그래도 모텔예약도 했으므로 초행길이었으나 출발을 했다. 바로 고속도로로 차를 올려 30분만 달려가면 인적이 드문 외곽지가 나타났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고 오가는 차량도 20~30분에 한 대씩 지나칠 정도로 한적했다. 미국에 가기 전에 1년 먼저 미국 유학을 다녀왔던 큰형은 고속도로에서의 주행 주의점과 경찰을 만났을 때 필수적인 행동요령들을 잘 설명해주어서 당황스러웠거나 생소하지는 않았다. 사막에 만든 고속도로라 직선보다 더 곧은(?) 도로는 핸들을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그냥 잡고만 있으면 되었다. 아무런 조작도 없이 30분간 혼자 계기판과 표지판만 보고 가기도 하였다. 앞만 보고 달리던 그 때, 차창 양편으로 수도 없이 떨어지는 별똥별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야경이었다. 도로 양편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에는 맑은 밤하늘에 별들이 180도 지평선 끝까지 반짝이는 것을 한 참 후 에야 느낄 수가 있었다. 헤드라이트 빛없이 별빛만으로도 운전해도 도로는 훤하게 보일 정도로 밝게 빛났다. 이러한 야경은 산악이 70%인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평소에 알고 있었던 별자리로 북두칠성과 북극성의 위치도 확인하면서, 쉼 없이 3시간을 가다가 화장실을 들리기 위해서 주변을 살폈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와는 다르게 고속도로 내 휴게소는 없었고, 주유나 식당은 일단 인근 마을에 가기 위한 고속도로를 벗어나 인터체인지 부근의 마을에서 가능했다. 그렇게 되면 시간 낭비가 많아서 참으면서 지나쳤다. 한참을 더 가다 보니 고속도로 내 화장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휴게소가 아닌 화장실과 간이 의자만 있는 공간이었다. 야간에 피로하거나 잠이 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소변 후 약간의 스트레칭을 하고 바로 가던 길로 향하였다. 제한 속도는 주마다 달라 표지판에 쓰인 대로 달렸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알고 있었던 노래는 애국가를 포함해서 소리도 낼 수 있는 높이까지 질렀던 것 같았다. 혼자 광란의 시간을 보내면서 가던 중 저 멀리 교차로 상단에 경찰차가 다른 차량을 검문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을 목격하였다. 속으로 아프리카의 사자는 먹이 감 하나를 잡았을 때 다른 먹잇감은 지척에 있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가던 속도인 시속 70마일(제한 속도 65마일)로 주행하면서 교차로 밑을 지나갔다.

지나 간 후 백미러로 뒤를 돌아보니 양쪽의 번쩍이는 라이트와 사이렌 굉음을 내면서 내 후미로 바짝 다가오고 있었다. ‘아뿔싸! 내 생각이 틀렸구나, 그러나 당황하지는 말자’ 라고 마음먹고 침착하게 속도를 줄이며 우측 깜빡이를 켜다가 차를 세웠다. 이 때를 예견해서 큰형은 나에게 설명해 준 게 있었다. 검문 시에는 실내 불을 밝히고, 운전석 창문을 열고 양손을 핸들 위에 얹어 놓고 경찰관이 올 때까지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친절하게 차에서 내가 내리려고 하면 경찰관은 먼저 총을 뽑아 자기를 방어하는 것이 합법화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백미러로 뒤로 보니 경찰관은 두 명으로, 나를 세워 두고 한참 누군가와 통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도난 차량인지 조회를 하는 것 같았다. 몇 분이 지난 후 운전석 경찰관은 서부영화에서나 보는 것 같은 자세, 우측 손은 허리춤의 권총에 얹어 서서히 필자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걱정이 되었다. 진짜 경찰관인지 아니면 경찰관으로 위장한 강도들인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았지만 서로가 긴장하는 찰나였다. 너무나 교본(FM)대로 검문을 받으려고 하는 나를 파악하고서는 경찰관은 안심을 한 듯 심야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내가 제시한 운전면허증을 확인한 후 ‘어디서 어디로 가느냐, 왜 쌍 라이트(high beam)를 켰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나를 검문하는 이유가 과속이 아니었구나. 라는 것을 파악하였고 나는 언제부터 쌍 라이트를 켰는지도 모른 채 달렸던 모양이었다. ‘초행길이고 심야라서 앞 도로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불빛을 밝혔다’고 설명을 했다. 경찰관은 친절하게 ‘이해했는데, 맞은편에서 상대방 차가 올 때는 불빛을 낮춰 달라’ 라고 주의를 준 뒤 헤어졌다. 아마 더 의심스러웠으면 차에서 내려 팔을 뒤로 포박한 다음 무기나 마약을 찾기 위해서 차를 뒤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이 그렇게까지 각박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참 좋은 경험을 한 예가 되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 암센터의 염색체검사실의 규모는 우리와 차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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