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순 경일대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임한순 경일대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한국 민주주의에는 정치가 없다.” 민주주의가 숨 쉬는 원천은 정치다. 정치는 권력 배분이고 그 바탕은 관용과 타협이다. 이 바탕이 무너지면 정치가 죽고 통치만이 작동된다. 민주주의는 자연히 거푸집으로 전락한다. 군사정권을 통해 익히 체험했었다. 문제는 정치 실종이나 변질이 여, 야 모두가 끊어내지 못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탈당을 둘러싼 민주당 내 움직임이 우려스럽다. 분위기가 매카시즘적이다. 당 대표에다 총리까지 지낸 인사가 자신을 키워 준 당을 등지고 탈당한다는 사실이 당원들에게 충격일 수 있다. ‘온갖 수혜 속에 호의호식하다 야반도주하는 몰염치’로 비난받을 여지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오래전 탈당을 예고했었다. 시간이 있었다. 이재명 대표와 담판자리도 마련됐었다. 교황선출 방식의 ‘콘클라베’는 아니어도 합의 도출을 위한 진지한 설득과 타협이 필요했다. 겨우 마련된 독대는 통과의례에 불과했다. 일찌감치 결렬됐지만, 모양새를 갖추느라 말없이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뒷이야기가 씁쓸하다. ‘헤어질 결심’을 되돌릴 의지와 타협 노력이 있기나 했는지 의문이다. 또 탈당 기자회견 당일 아침에 이루어진 의원 129명의 집단 성명도 개운치 않다. 추가 탈당을 막기 위한 내부 단속용에 불과했고 당 대표에 대한 충성서약이었다. 일부 불참 의원에게 가해진 테러 수준의 언어폭력이 이를 입증한다. 이어지는 릴레이 규탄 성명도 공천장을 향한 아우성으로 읽힌다.

정치 실종의 결정적인 뇌관은 종족주의적 팬덤이다. 정책을 위한 결집이 아니라 개인을 향한 맹목적 단결과 폭력이다. 브레이크 없는 팬덤이 정치를 질식시키고 진영 이탈을 부추긴다. DJ와 YS가 팽팽히 맞서며 당내 정치가 살아 있었을 때 민주당은 가장 민주당다웠고 강했다. 정치 실종은 독재에서 보듯 1인 우상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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