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태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한민국이 성장통을 앓고 있다. 각양각색의 진단과 처방을 내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하다. 출생률 감소, 학령인구 감소, 노동인구 감소, 고령화, 청년 인구의 지역이탈, 지역 불균형 확대, 교육생태계 붕괴가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대외적 환경조건도 최악이다. 코로나 공습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계속되고, 중미 갈등이 만든 시장불안과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는 결핍과 혼란이 가중되어 약육강식의 야수적 본능이 판치는 난장판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총선을 앞둔 대한민국 정치도 사분오열된 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합집산, 비방전은 물론이고 칼춤까지 등장하면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기대했던 국민을 상실감에 빠트렸다. 원색적인 정치구호로 가득 찬 플랜카드가 거리마다 펄럭이지만 보는 국민의 마음은 답답하다.

그 와중에 교육부가 지역중심 대학육성체계를 위한 “글로컬30” 사업과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인 “라이즈(RISE)” 사업을 처방전으로 내놓았다. 핵심내용은 지역대학을 전위대로 삼아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사업을 발주하면서 제시한 기준은 첫째,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 혁신경쟁력을 갖추었는가 둘째, 국가주도가 아닌 지역주도의 혁신 엔진으로 역할을 다하는가 셋째, 재정적 지원을 넘어 지자체와 대학이 협력해서 지역을 이끌 수 있는가였다. 사업이 발주되자 대학들은 “지역과 함께 성장”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앞다투어 레이스에 참가했다. 교육부의 발표대로라면 2023년, 2024년 각각 10개교, 2025년과 2026년에 각각 5개 교가 선정되는데 2024년에는 4월에 예비지정, 7월에 본지정을 한다는 계획이다. 최초 선정된 대학뿐만 아니라 나머지 대학들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교육부가 설치한 3개의 허들을 넘어 완주해야 한다. 허들을 넘어 결승점에 도달한 30개 대학은 연간 200억 원씩 5년간 1000억 원을 지원받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대학은 도태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대학마다 사활을 걸고 경주에 임하고 있다. 벌써 최초 선정된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의 입시성과가 실시간 비교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만약 교육부의 의도대로 글로컬30이 성공한다면 교육생태계가 복원되고 인구감소와 지방소멸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조건과 출발선이 각기 다른 대학에 연간 200억 원의 재정지원만 하면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가 해결될까? 애초 글로컬30 사업은 글로벌과 로컬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계책이었다. 지역 대학들의 중심성을 복원하여 글로벌 시장으로 직진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사업이 발주되자마자 경쟁과 줄서기에 길 들여진 대학들이 경마장의 경주마처럼 쏜살같이 치달리기 시작했다. 로컬도 글로벌도 없는 황량한 벌판으로 달리는 대학을 교육부도 고삐를 놓친 채 방관하고 말았다. 경쟁과 서열화가 아니라 협력과 네트워크 구축이 관건인 사업이고, 100미터 달리기 시합이 아니라 강강수월래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호흡을 맞추어야 일이 되는 사업임을 잊었다. 아직은 출발단계여서 두고 볼 일이지만 정확한 진단과 옳은 방향감각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업의 최종목표는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지역발전이고 모든 국민들의 행복이다. 대학을 통합하고 줄이는 것만으로는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을 막을 수 없다. 처음 의도대로 지역대학을 글로컬 대학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학을 대학답게 만들어 교육생태계를 완전하게 복원시켜야 한다. 대학들이 만든 숲에 유치원부터 초, 중, 고 교육이 함께 자라고 어우러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관건은 재정지원의 총량이다. 30개 대학을 선정하여 5년간 천억을 지원한다는 것은 사탕발림이다. 연간 200억의 푼돈을 쥐어주고 인구 수백만의 지역을 살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최소한 지역중심대학부터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야 한다. 현재 지급하는 국가장학금에 지방정부의 예산을 조금만 보태면 등록금 전액과 생활비를 지원할 수 있다. 그리고 라이즈 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안배하게 되면 지역인재가 지역을 떠날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면 대학이 살고, 교육생태계가 복원되고, 지역사회가 소생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어려움은 위험의 징조가 아니라 성장통이다. 위기상황인 것은 분명하지만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선진국가들이 그러했듯이 발전과정에서 겪는 필수적인 성장통이다. 우리도 서둘러 교육생태계를 복원하면 살기 좋은 대한민국에서 계속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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