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권 전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장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전세계는 지금 기후위기에 대응하느라 분주하다. ‘기온의 상승을 1.5도C 이내에서 막자’라는 공동의 목표를 걸고 2050 탄소중립 선언을 거의 모든 문명국가들이 했다. 대한민국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당연히 이 거대한 흐름에 발맞추어 2050 탄소중립선언을 하고 중간목표인 2030 NDC 계획을 국제사회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런데 2050 탄소중립 보다 더 급하게 발등에 떨어진 불이 RE100이다. 원래 세상의 변화에 맨 앞줄에 기업이 있다. 세계 초일류기업들은 기업 단위에서 탄소기반의 화석에너지에서 친환경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먼저 천명하고 나왔다. 그것이 RE100이다. 지금 현재 전세계 약 400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수출국가인 대한민국은 구매자인 글로벌 대기업들의 RE100 요구를 피해갈 길이 없다. 당연히 한국도 삼성전자 등을 비롯한 30여 개 기업이 RE100 선언에 동참을 한 상태이다.

구미에는 삼성전자, SK실트론,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전자 등이 있다. 이 중 LG이노텍이 가장 시급하다. 나머지 기업들은 RE100 달성 목표연도가 2050인데 비해 LG이노텍은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미국 애플사와 협약을 했다. 필자가 올 초에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장으로 재직할 때 확인한 바에 따르면 회사 경영진은 2030년까지 달성을 명확히 했다. 동시에 재생에너지 구매를 서두르고 있었다. 문제는 LG이노텍의 생산공장, 구미, 파주, 광주에서 구미가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상회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많은 전기를 구미공장이 쓰고 있으므로 구미와 인근 시군에서 재생에너지를 충당해야 하는데 현재로썬 답이 없다는 것이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만약 향후 2~3년 내에 해법이 가시화되지 않으면 LG이노텍 경영진은 플랜B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플랜B란 공장의 해외이전 내지 재생에너지 수급이 가능한 국내의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을 의미한다. 기업이 손 놓고 2030년까지 기다리진 않을 것이다. LG이노텍, 삼성전자, SK실트론 등과 그 협력업체들이 다 떠난 구미공단을 상상할 수 있는가? 에너지의 대전환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최근 구미에서 한국옵티컬하이테크란 일본계 기업이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에 필름을 납품하는 기술력 있고 해마다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멀쩡한 회사이다. 2022년 공장에 화재가 발생한 이후로 구미공장을 폐쇄하고 같은 일본 니토그룹이 운영하는 평택에 위치한 한국니토옵티컬란 회사로 물량을 옮기고 있다는 것이다. 구미공장 노조에 따르면 최종구매자인 애플이 2022년 1월 구미 옵티컬하이테크로 실사를 나왔다 한다. 여기서 실사란 RE100 점검을 의미한다. 애플은 이미 2015년 SK하이닉스 실사를 시작으로 한국의 20개가량의 협력업체와 해마다 RE100 점검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때 애플은 옵티컬하이테크에 RE100 이행프로그램 제출을 요구했을 것이고 회사 경영진은 화재를 핑계로 RE100 이행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경기도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경기도는 김동연지사가 경기RE100 달성을 도정의 제1 목표로 제시하고 임기 중 9기가의(1기가는 원전 1기에 해당한다) 재생에너지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TF팀을 만들어 RE100 이행대상이 되는 글로벌 대기업과 협력업체까지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협의하고 있다.

이미 RE100은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과 그 협력업체 수준을 넘어 부품소재를 납품하는 공급망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어찌할 것인가? 언제까지 손 놓고 있을 것인가?

구미 RE100 이행전략의 수립이 시급하다. 시민·기업·학계·행정·정치 등이 참여하는 구미RE100위원회의 구성을 제안한다. 영농형태양광 특화단지의 조성을 제안한다. 경북형 육상풍력 프로젝트를 가동해 기가급 이상의 전력의 확보를 제안한다. 구미와 인근 시군(김천, 의성, 상주, 군위, 청송, 영천 등)의 RE100상생협의체를 제안한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길지 않음을 명심하자. 기업만 좋은 일이 아니다. 누구나 전기사업자가 될 수 있고 수익을 누릴 수 있다. 땅이 없는 사람도 출자를 통해 함께 할 수 있다.

2024년이면 분산에너지활성화법이 도입된다. 재생에너지 생산자가 한전을 거치지 않고 기업 등 전기사용자에게 직접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도 가능하다. 당장 울산이 특화지역 선정을 준비하고 있다. 동해 해상풍력을 울산에 바로 공급받겠다는 취지다. 현재 상태라면 이 법은 오히려 구미에게 독이 될 수 있다. 먼 거리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가 있더라도 구미에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직 유일한 해법은 재생에너지 생산에 총력을 기울이고 의미 있는 전력을 확보하는 길이다. 땅은 충분하니 불가능하다 말하지 말자. 의심할 것은 우리의 의지뿐이다. 다른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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