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직무 유기가 도를 넘었다. 여야의 이견으로 원전의 지속적인 가동을 위해 꼭 갖춰야 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영구 처분 시설(고준위 방폐장)을 마련하기 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의 처리를 하염없이 미루고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부터 원전이 있는 전국 5개 시군의 자치단체장과 지역민이 줄기차게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 국회 처리를 주장해 왔지만 허사였다.

결국 21대 국회에서도 이 법안의 통과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 법은 현재 여야 이견으로 답보 상태에 빠져 21대 국회 회기 종료가 임박해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총선이 4월 10일인 점을 감안하면 법안 처리의 데드라인인 2월을 넘길 수밖에 없어 21대 국회에서의 처리가 어렵게 된다.

국내에서 원전을 가장 많이 보유한 경북 지역민들은 “법안 처리를 미루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직무 유기”라며 “입만 열면 민생이라면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에 대해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은 21대 국회의원 임기 내 처리가 되지 않으면 법안은 모두 자동 폐기되고, 22대 국회 구성 이후 원점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국내 최대의 원전 밀집지역인 울진 한울원전 인근 주민들로 구성된 울진범군민대책위원회는 특별법이 이번 회기 내 처리되지 않으면 원전 소재 5개 시·군과 힘을 합쳐 대규모 항의집회를 열 계획이다. 울진범대위는 지난달 20일 한울원자력본부 정문 앞에서 군민 100여 명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의 신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준위 방폐물 처리시설이 없는 국내 원전은 1978년 첫 가동 후 발생한 1만8600t의 폐기물을 고스란히 원전 내에 임시 보관하고 있다. 경북 경주시와 울진군을 비롯해 원전 소재지 5개 시·군 주민들은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 처리 불발로 자칫 임시저장시설이 영구시설화돼 지역민들에게 위해요인이 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정부도 2030년부터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이 차례로 포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회가 총선을 앞두고 소모적 논의를 반복해 법안통과의 기회를 놓치게 되면 국가적 난제를 풀 기회를 놓치게 된다. 국회가 신속히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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