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 법무법인 수안 변호사
김명식 법무법인 수안 변호사

지난해 9월, 아직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위증으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의뢰인의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건을 함께 담당하는 변호사님과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 서울구치소를 방문했다. 유리로 된 작은 방에서 서로 마주 앉았다. 너무 힘겨워 보여 첫마디를 꺼내기가 어려웠다. 시니어 변호사님이 먼저 어렵게 한 마디를 건넸다.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시원한 물이 먹고 싶어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이라 깜짝 놀랐다. 반사적으로 일어나서 뒤에 있는 정수기로 가서, 종이로 된 작은 컵에 물을 담아 건네 주었다.

참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의뢰인의 부모님은 의뢰인이 어릴 때 이혼을 했다. 아버지의 외도가 원인이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의뢰인과 의뢰인의 언니를 어릴 때부터 키웠고, 어머니의 헌신으로 두 딸이 아버지 없이도 잘 성장했다. 아버지는 사업체를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용돈 두어 번 준 거 외에는 경제적으로 전혀 도움을 준 적이 없었다. 의뢰인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있었으나 큰 불편함 없이 지내왔다. 그런데 의뢰인이 결혼을 하게 되면서, 결혼식에 함께 들어갈 아버지가 필요하게 되었다. 의뢰인은 어머니께 고민을 이야기했고, 어머니는 아버지 회사로 가서 일을 배우면서 아버지와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의뢰인도 당시 영어유치원 개원을 준비하고 있던 때라 일을 배울 필요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결혼식에 함께 할 아버지가 필요했기에 어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잠시 아버지와 딸은 함께 지냈고, 의뢰인의 결혼식도 무사히 잘 끝났다. 이후 의뢰인은 아버지의 회사에서 퇴사했고, 또 그렇게 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재판에 나가서 증언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딸을 직원으로 등재하고 국가로부터 취업 장려 보조금을 받아왔고, 의뢰인이 퇴사한 이후에는 이 보조금을 받으면 안 되었는데, 퇴사 처리를 하지 않고 보조금을 받아 오다가 적발이 되었던 것이었다. 이 일로 재판이 진행되었는데, 의뢰인에게 보조금 수령 기간 동안 실제 일을 했다고 증언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의뢰인은 그렇게만 말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믿고 그렇게 증언해 주었다. 그리고 그 증언으로 인해 위증으로 기소되었고, 결국 구속까지 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구속까지 되었을까. 당연히 위법한 행위를 하고 위증을 부탁한 아버지의 잘못이지만, 의뢰인에게도 여러 차례 선택의 순간은 있었다. 아버지의 부탁을 듣고 거짓 증언을 하지 않았더라면, 위증으로 수사를 받을 때 자백을 했더라면, 기소된 이후 재판 과정에서 자백을 했더라면, 이 중 하나라도 했더라면 구속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결혼을 위해 아버지와 다시 연락을 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 의뢰인이 구속된 이후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을 배우도록 권유했던 어머니가 가장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자신은 비록 이혼을 했지만, 딸에게는 아버지와의 인연을 이어주고자 했던 어머니를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이 가족은 왜 이렇게 꼬이고 힘들어졌을까, 참 여러 생각이 들었다.

경찰과 변호사를 하면서 인생의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만나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건은 큰 것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순간 무심코 넘어갔던 일, 작은 것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 욕심이 나서 조금 무리했던 일들이 나중에 큰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운이 좋아 몇 번은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는 있지만 반복되면 결국 그 결과가 돌아온다. 그 순간의 작은 선택이 큰 결과로 돌아오는 것이 어떨 때는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인생이 그런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닫게 된 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의뢰인도 아버지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래서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주었겠지만, 그 순간 그 부탁을 거절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되었건 우리의 목표는 명확했다. 크리스마스 때까지 집으로 보내주자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열심히 노력했고, 비록 크리스마스 때까지 보내주자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새해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의뢰인은 사랑하는 남편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 의뢰인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길 바란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