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밥상에 놓인 밥그릇은 하나. 둘러앉은 선비는 열 명, 모두 배가 고프다. 서로 눈치를 살핀다.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그들의 숟가락이 일제히 밥그릇을 향한다. 난장판이 된다. 결국 주먹다짐이 벌어지고 비명이 터진다.

지나던 사람이 달려 와 물었다.
“왜 이렇게 싸우시는지.”
“누가 기분 나쁜 소리를 해서…”
다음날도 싸움판이 벌어졌다.
“누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어서…”
그 다음날도 난장판은 이어졌다.
“누가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해서…”

배가 고픈 선비들의 처절한 ‘밥그릇 싸움’이었지만 누구도 ‘밥그릇’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세상 도리와 이치에 어긋나 벌인 징치’로 포장됐다. 성호 이익 선생의 ‘성호사설’에 나오는 이야기다.

대통령 선거는 정당을 통합하는 구심력이 있는 반면에 국회의원 선거는 정당의 분화를 촉진하는 원심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총선 때마다 신생 정당들이 ‘떴다방’처럼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소리도 없이 사라져 갔다. 22대 총선도 예외 없이 창당 러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에서 이탈한 정치인들이 중심이 돼 있다. 양당의 공천이 정리되면 이탈자는 더 늘 것이다. 창당 명분은 대부분 ‘양당제도와 기득권 정치 타파’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그 체계 속에서 수혜를 누렸다.

가치지향점이 전혀 달랐던 그들을 제3지대로 묶어내는 것은 정치적 이익이다. 밥그릇, 곧 공천과 여의도 입성 가능성이다. 하지만 ‘밥그릇 싸움 패자부활전’으로 재단되면 제3지대는 실패다. 어떤 명분도 구제 못 한다. 거대 양당의 공천 싸움도 처절하다. 한정된 자리를 향한 주류와 비주류의 다툼이 더도 덜도 아닌, 선비들의 밥그릇 싸움 바로 그 모습이다. “당파는 밥그릇인 벼슬자리 확보를 위해 생기고 당쟁은 이 밥그릇의 균형이 깨지는 데서 생기는 법이다.” 조선 당쟁시대를 꿰뚫은 성호 선생의 날 선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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