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페르세포네는 아름다웠다. 곡식과 풍요의 여신, 어머니 데메테르는 딸 페르세포네를 지키기 위해 그녀를 시칠리아 섬에 숨겼다. 그녀는 아름다운 꽃들로 수 놓인 꽃밭을 거닐며 행복을 노래했다. 지하의 신 하데스가 그녀를 노렸다. 수선화에 흠뻑 빠진 그녀를 납치해 지하 세계로 데려갔다. 어머니 데메테르는 절망했다. 풍요의 여신이 깊은 슬픔에 잠기자 세상이 황폐화됐다.

결국 제우스신의 중재로 페르세포네는 1년에 8개월은 지상에서 살지만 4개월은 지하 세계, 하데스에게로 가야만 했다. 그녀가 지하세계로 떠나면 세상은 황량한 겨울로 들어가지만, 그녀가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면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시작된다. 그리스 신화는 봄을 해방의 찬가로 묘사했다.

입춘이다. 페르세포네가 돌아온다. 곧 그녀의 미소가 담긴 화신이 곳곳에서 들려 올 것이다. 조상들은 입춘방을 대문에 붙이고 경사를 빌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건양다경’을 놓고 논란이 있지만 봄을 맞아 풍요와 경사,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은 페르세포네를 기다리는 데메테르의 기도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청동의 못들처럼 꼿꼿하게 모가지를 세우고 견딘 진실로 눈물나는 향일성(向日性)의 생명의 신앙/ 가장 잘 침묵하는 이가 가장 잘 생명을 예비함을 눈으로 보겠거니/ 멍들어 처절히 더 빛부신 시절, 젊디젊은 정결한 봄이여’ (김남조 시 ‘봄’ 중에서)

봄은 기다림이다. 페르세포네의 다른 이름 ‘코레(Core)’는 씨앗. 청동 못같이 날카로운 어두운 땅속에서 한 세월을 기다리며 견딘 그 생명력이 결국 싹이 되는 계절. 독자 여러분의 가정에도 입춘을 맞아 인내가 새싹이 되는, 화사하고 밝은 페르세포네의 봄날이 열리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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