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나교 드아트텍컴퍼니 대표·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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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벽화에서 기인한 그림은 유구한 인류사를 거치면서 문자 발명, 기록화, 종교화, 기호학, 순수 예술 등의 유형으로 나누어져 면면히 계승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리는 행위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표현으로 시대마다 쓰임이나 목적은 달라도 유기적으로 인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선사시대의 그림은 주술적이거나 의사 표현, 기록을 위한 수단이었으나 점진적으로 더 특화되고 세분된 여러 주류로 현재까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특히 기록화나 종교화는 유한한 인간의 생사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집착이 침착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고대이집트의 피라미드 벽화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벽화 그리고 고구려 고분벽화 등의 기록화된 그림은 당대의 지배계층의 현세와 내세에 대한 신앙이나 세계관, 생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대안 덕흥리 고분벽화. (세계문화유산 등재 2004년)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벽화들은 국왕이나 지배계층의 보호 아래에 실효적인 목적을 가지고 제작되었다. 국가를 통치하는 지배자나 신이 정한 율법으로 규격화된 일정한 형식에 따라 사물의 형태나 특징을 묘사하였기에 예술가의 개성이나 제작자의 서명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 이는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기록화로 창의성에 근간을 두고 있는 현대미술과는 그 결이 다르다.

현존하는 고구려의 그림 자료는 거의 모두가 무덤의 벽화 양식이고 죽은 뒤에도 인간의 영혼이 존재하여 내세에서 생활이 계속된다는 믿음과 욕망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무덤 안의 내실 벽화는 묘주가 생존했을 때 모습과 생활상을 재현하여 현세의 삶을 내세와 연결하고자 하는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 실례로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에 그려진 내용을 살펴보면, 묘주 부부가 시종들의 시중을 받는 모습, 대규모 행렬, 사냥, 연회와 가무 모습 등을 묘사하여 무덤 주인이 살아 있을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는 주로 3세기 중엽에서 7세기 전반에 걸쳐 제작된 것들이 많은데, 이는 단순한 장례문화만을 표현한 그림이 아니라 고구려의 사상, 문화, 일상생활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서 유의미한 귀중한 자산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의 여러 고분벽화에서 보여주는 내세관을 통해 사후 세계나 인간의 생사에 관한 관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류 문화사를 통해 통치자나 권력을 가진 지배계층이 자신의 치적이나 영원불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 남겨놓은 기념비적 건축물이나 조형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진시황릉의 용마갱,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중동의 버지 칼리바 궁전, 이태리의 바질리카 산타 마리아델 포포로 대성당 등 같은 사례들은 인간의 교만과 과도한 사치, 내세에 대한 집착 등으로 제작된 건축물로 국가 재정부담을 일으켜 사회적 논란의 씨앗을 낳기도 했다. 문화는 진보해도 인간은 진보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듯이, 우리나라 역시 선심성 공약이나 사적 치적을 위해 불필요한 조형물이나 건축물 설치하여 막대한 세금을 낭비하고 관리 소홀 등으로 방치되거나 폐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언가를 남겨 자신을 각인시키려 하기보다 누군가가 나를 의미 있는 존재로 진정 기억해 준다면 죽음과 무관하게 영원히 존재하는 게 아닐까 ‘인간은 유한한 존재인가?’에 대한 현문우답을 위 문장으로 갈음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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