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영화 ‘벤허’ 광팬이었다. 수십 번 보았다.

주인공 벤허와 라이벌 멧살라의 숨 막히는 전차 경주가 그를 압도했다. 그가 눈여겨 본 것은 경주마를 부리는 두 사람의 방식. 멧살라는 채찍을 연신 휘두르며 경주마를 몰아쳤다. 하지만 벤허는 고삐만 간혹 흔들 뿐 경주마를 믿고 맡겼다. 초반에는 멧살라의 우세. 종반에 벤허가 멧살라를 추월하려 한다. 충돌로 부서진 마차 잔해가 벤허 앞길을 가로막는다. 절체절명의 위기, 모든 게 끝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경주마들이 장애물을 뛰어넘는다. 벤허도 추락의 위기를 간신히 모면한다. 멧살라는 벤허의 추월을 막으려고 채찍으로 내려치다 결국 몸싸움 끝에 떨어져 만신창이가 된다.

이 회장은 여기서 자율경영을 끄집어낸다. 제2 창업 선언 때 핵심가치로 등장한다. 현장에 재량을 부여한 자율경영, ‘임파워먼트(Empowerment)’는 삼성이 세계 일류 기업으로 우뚝 서는 동력이 됐다.

“미래전략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느꼈다. 없애겠다.”

2016년 12월 국회 ‘최순실 청문회’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그룹 컨트롤타워 ‘미전실’ 해체 뜻을 밝혔고 두 달 뒤 실제 해체됐다. 오너의 사법 리스크가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 체제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정치적 압력으로 시작된 ‘삼성의 실험’, 컨트롤 타워 부재 자율경영은 힘을 쓰지 못했다. 지난해 반도체 사업에서 역대 최대 적자를 냈으며 고대역폭메모리(HBM)는 SK하이닉스에 밀렸다. 대만 TSMC와의 간극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이재용 회장에 대한 법원의 ‘경영권 승계 부정회계’ 무죄 선고를 계기로 경영 전문가들은 ‘자율경영 확대’를 주문한다. 무늬만 자율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신 이 회장은 인재양성과 M&A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 회장도 선대 회장을 따라 ‘벤허’ 광팬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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