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의사 인력 확대는 시대적 과제"
비수도권 대학 정원 집중 배정 추진
인력 수급 현황 주기적 검토·관리
의협 "일방적 정책…강행 시 총파업"

양동호 대한의사협회 협상단장이 6일 오전 서울 모처에서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대책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의료현안협의체에 참석, 의사협회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정경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연합
정부가 내년 대학 입시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기 공식적으로 밝혔다.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동결됐던 의대 정원은 19년 만에 늘어나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열고,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 입시에서 5058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비수도권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증원분을) 집중 배정한다”며 “추후 의사 인력 수급 현황을 주기적으로 검토·조정해 합리적으로 수급 관리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의사 단체 반발에 대해선 “비상진료 대책과 불법 행동에 대한 단호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놓고 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사 인력 확대는 늦출 수 없는 사안”이라며, 의료계의 협조를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의사 인력 확대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국민 생명과 건강은 물론, 나라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의료 개혁에 의료계의 협력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 대한의사협회는 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계의 거듭된 제안에도 충분한 논의와 협의 없이 일방적인 정책만을 발표하는 정부의 태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의협은 특히, “의료현안 협의체를 통한 의료계와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 발표를 강행할 경우, 집행부의 총사퇴와 총파업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의협 이필수 회장은 “오늘과 같은 첨예한 갈등의 골을 피하고 국민건강수호라는 대명제를 지켜나가기 위해 입장 차이에도 의·정협의체를 구성해 정부와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며 “하지만 정부는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한 의료계의 본격적인 논의 요청을 외면하며 의료현안에 대한 더 이상의 구체적인 논의를 진전시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한 의·정협의체 구성 및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라며 “‘국민의 건강증진과 보건의료 발전’이라는 대원칙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무책임한 태도”리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또, “총파업 강행 시 회원, 전공의, 의대생 우선 보호대책을 마련했다”며 “총파업 절차 돌입에 따라 회원, 전공의, 의대생에 대한 법적 문제 발생 시 대한의사협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가 내년 의대 입학정원을 파격적인 수준인 2000명 늘리기로 한 것은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우리나라 의대 입학정원은 20년 가까이 묶여 있어 주요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10년 후에는 1만5000명 가량 의사가 부족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러한 의료인력 부족은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 필수·의료 붕괴 상황을 만들었다. 의사가 부족해 진료 시간이 지나치게 짧은 점 등도 정부의 증원 결정에 반영됐다.

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보다 총 병상수, 접근성, 의료 서비스의 질 등 여러 측면에서 의료 사정이 좋다. 의료진의 실력과 의료 기술 수준도 세계적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의사 수는 OECD 평균에 못 미친다.

OECD가 지난해 공개한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23’을 보면 한국의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는 2.6명으로, OECD 평균인 3.7명보다 훨씬 적다.

또, 2021년 한국의 의사 1인당 진료 인원은 6113명으로, 관련 통계가 있는 OECD 32개국 가운데 가장 많았고, OECD 평균인 1788명의 3.4배에 달했다.

의사 수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환자들의 ‘의료쇼핑’ 관행이 더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의사 1명이 진료한 환자가 많다 보니 진료 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발표에 따르면 2019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1차 의료 진료시간은 평균 4.3분으로, OECD 평균(16.4분)의 4분의 1 수준으로 짧았다. ‘3분 진료’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의사 수 부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으로 요약되는 지역·필수의료 분야다.

지역의료 인프라 부족에 환자들이 이른바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서울아산병원)이 있는 서울로 몰리는 상황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서울·경기·인천을 제외한 지방 거주자 중 빅5 병원에서 진료받은 인원은 2013년 50만245명에서 지난해 71만3천284명으로 42.5% 급증했다.

복지부 조사에서도 지역의료기관 입원환자 중 해당 지역 환자의 구성비를 나타내는 지역환자 구성비가 서울이 59.7%로 가장 낮았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 10명 중 4명은 다른 지역에서 왔다는 뜻이다.

필수의료도 상황은 비슷하다.

최근 정부의 민생토론회에 참석한 소방본부 구급대원은 ‘응급실 뺑뺑이’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심정지 환자를 이송하며 관내 병원에 문의했지만, 4개 응급실에서 병상 부족과 의료진 부재로 수용 불가를 통보했고, 결국 대구까지 편도로 100㎞ 넘는 거리를 이동하며 응급차 안에서 심폐 소생술을 이어갔다고 한다.

소아청소년과가 줄어들면서 소아환자와 보호자가 병원 문을 열기 전부터 길게 대기하는 ‘소아과 오프런’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에 복지부는 우리나라의 필수의료 상황을 ‘벼랑 끝’으로 규정하고 의사인력 확충 등 의료 개혁을 반드시 완수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대로 가다가는 초고령사회에 늘어날 의료 수요나 신종 감염병의 대유행 등에 대응하지 못하고, 지역·필수의료 상황도 개선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에 정부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생을 늘리고, 증원 후에는 네덜란드의 의료인력자문위원회(ACMMP)와 일본의 의사수급분과회를 참고해 인력 수급 정책을 체계화한다는 방침이다.

이기동 기자
이기동 기자 leekd@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실, 국회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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