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원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장
한희원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장

춘추전국시대! 그 피비린내 풍기던 살육의 시대를 끊고 천하를 통일한 한고조 유방은 말했다. “짐의 능력이 행정에서는 소하보다 못하고, 전쟁에서는 한신만 못하고, 지략과 전략에서는 장량만 못했다” 소위 삼불여(三不如)이다. 특히 장량을 가리키며 “군막 안에서 계책을 짜서 천 리 밖 승부를 결정지은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갈 길을 제대로 잡아준 전략가 장량이 아니었다면 천하통일의 대업이 불가능했음을 고백한다.

전략(戰略)은 방향을 잡아주고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당위성을 일깨워준다. 저출산과의 전쟁에서도 인문철학이 핵심인 이유이다.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저출산과의 전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는 점에 그 어려움이 있다. 출산 제고라는 결과지향이라면, 중혼이나 일부다처제를 말 못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공동체 윤리 테두리에서 수행되어야 하는 절제의 전쟁이다.

어떤 고등 3년생 여론조사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학생이 50%를 넘는다고 한다. 사회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양육비나 주택 때문에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일까? 그렇지 않다. 근본적으로는 성윤리의식의 변질이 문제이다. 숙박업에 종사하는 일부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성 윤리가 개짐승화되었다”고 통탄한다. 침실 청소 때 나타나는 약 포장지나 다양한 성적 도구를 사용한 육체탐사가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질 리 없다고 탄식한다. 언론도 “결혼해서 애 낳으면 몸 다 망가진다. 시간도 없어진다. 결혼은 인생 쫑네는 짓이다. 성 욕구 해결방법은 차고도 넘친다.” 등의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한다.

성욕 해결방법이 널렸으니 결혼 생각이 있을 리가 없다. 상대를 정숙한 배우자로 믿지도 못하니 결혼생활이 순탄할 리도 없다. ‘나 혼자 산다.’ 등의 예능프로그램은 폐지해야 한다. 솔로보단 연인이, 연인보단 부부가 더 가치 있고, 살만하다는 생각을 청년들이 해야 한다.

그런데도 선거철을 맞아 여야는 경쟁적으로 돈 퍼붓기 공약을 내놓는다. 물론 돈 없이는 치를 수 없는 전쟁이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도 세계 최저출산국이 된 우리의 참담한 성적표 앞에서 반성해야 한다. ‘저출산 예산’을 처음 편성한 2006년부터 현재까지 저출산 관련 총예산액은 약 370조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출산율 최하위국가가 되었다.

행동의 뿌리는 의식이다. 의식개혁, 사회문화개혁, 성윤리개혁 없이는 저출산·비결혼을 해결할 수 없다. 종교윤리로 성문화를 제련한 유럽국가의 출산율이 유지출산율에 가깝게 지속되는 것은 인문철학적 인식이 정책의 밑바탕이어야 함을 알려준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아이 키우기의 신비로움은 차원이 다른 행복을 가져다준다. 맞벌이 부부인 내 딸과 사위는 아이 하나 기르면서, 하나 더 낳겠다는 결심이다. 돈 많이 들고, 양육이 힘든 것을 겪고도 왜 더 낳으려 하냐고 물었더니,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는 둘은 되어야겠다는 자발적인 결심이라는 것이다.

아이 키우기는 신비의 연속이다. 필자는 안다. 두 돌이 안 된 손녀가 나의 스승이다. 손자와 손녀를 통해서 가정에 웃음이 넘쳐난다. 아이를 통해서 부부애가 더 좋아지고 기쁨을 충전 받는다. 돈이 없던 50~60년대에 어른들은 결혼해서 자녀 낳고 아이를 기르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겼다. 이것이 결혼과 육아에 관한 불변의 인문철학이다.

여하튼 적지 않은 도시소멸로 바로 연결될 경상북도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저출산과의 전쟁 사령관 이철우 지사는 외친다. “젊은이들이여, 야성을 회복하라, 유목민으로 살지 말고 경북에 와서 정주민으로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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