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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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개, 라는 말을 들을 때 슬프다.
주인이 없어서 슬픈 게 아니라
주인이 있다고 믿어져서 슬프다.

개의 주인은 개일 뿐인 거지.
개와 함께 사는 당신은 개의 친구가 될 수 있을 뿐인 거지.

이 개의 주인이 누구냐고요?
그야 개, 아닐는지?

이 개가 스스로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아는 좀 멋진 절친쯤 될 수 있겠소만.

[감상] “늘/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반성」, 함민복) 우리는 ‘천오백만 반려인’ 시대에 살고 있다. 반려동물을 위한 호텔, 스파, 유치원, 돌봄 서비스, 장례식까지 없는 게 없다. 최근에는 반려동물 조의금, 49재, 천도재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지인의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는데, 영정사진도 올리고 제사상도 차리고 삼베옷을 입혀서 삼일장을 지내줬다”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반려동물을 지극정성으로 챙기는 마음은 그들이 세상에 둘도 없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제 ‘개장수’라는 말도 사라질 것이다. “견주, 라는 말”도 서서히 잊힐 것이다. “이 개가 스스로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반려(伴侶)가 아닐까.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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