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경구곡

인류에게 산수(山水)는 나무 베고 물 기르는 생활의 터전이며 사나운 짐승과 생존을 건 싸움을 벌이는 전쟁터였다.

실용의 객체였으며 세렝케티 초원 같은 생존 경쟁터였던 산수에 인문학적 가치를 부여한 이는 공자다.

‘요산요수樂山樂水’는 지구상의 만물과 차별화하는 인간선언이다.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하다고 함으로써 ‘산수지락山水之樂’ ‘인지지락仁智之樂’ 같은 높은 단계의 오락이 생겨났다.

공자의 제자 증점은 한 발 더 나아가 산수유람의 길을 열었다. 그는 스승 공자와 동문인 염유 공서화 자로 등과의 문답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세상이 오면 ‘춘삼월이 오면 봄옷으로 갈아입고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며 돌아올까 한다’고 대답해 공자의 찬사를 받았다. 여기서 ‘풍영지락諷詠之樂’이 나왔다. 조선 땅에 늘어선 ‘풍영’ ‘무우’ ‘영귀’ ‘풍호’ 같은 누정과 바위 이름의 주인은 증점이다.

조선의 선비들의 풍영지락, 산수유람은 ‘관광觀光’이다. 관광은 빛을 보는 것이다. 빛은 문명, 문화,인문이다. 선비들은 계곡과 산, 바위와 정자에 이름을 붙이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려 문화적 가치를 더했고 이를 보기 위해 찾아온 선비들이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려 오늘날과 다른 수준 높은 관광문화를 형성했다. 조선 선비들에게 산수는 성리학적 이상을 실현하는 수단이었고 자신의 이념을 확장시키는 소우주였다. 산수속에서 문화적 긍지와 철학적 자산을 구현해나갔다.

팔경과 구곡은 이같은 산수관을 바탕으로 심미적 시각과 철학적 이상을 드러낸 산수 예술의 총아다. 팔경이 예술적 심미적 소요공간이 것과 대조적으로 구곡은 철학적이며 교조적 공간이다. 주자를 경모하는 공간이 주자의 행적을 따르면서 자기완성을 꿈꾸는 조선 철학자의 이상이 고스란히 녹아드는 공간이기도 하다.

중국 ‘소상팔경’에서 비롯된 ‘팔경’은 조선 선비들이 자신의 거주지나 유람지 주변의 산과 바위 계곡 등 아름다운 경관에 이름을 붙이고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이상세계를 표현한데서 비롯됐다. 구곡은 주자가 무이산에 무이정사를 짓고 은거하면서 계곡 9곳에 이름을 붙이고 서시를 포함한 ‘무이도가’ 10수를 지은 데서 연유했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이 최근 ‘경북의 팔경구곡八景九曲’(김동완 지음)을 발간했다. 이책은 경북도내 안동팔경, 경주십이영,예천 금곡 구곡, 포항 해월루 팔경 등 팔경 7곳과 안동 도산구곡, 경주 옥산구곡, 봉화 춘양구곡 등 11곳의 구곡을 소개하고 있다.

‘홀로 선 자들의 역사’(글항아리)와 ‘경북의 충효열전 1,2’(한국국학진흥원)을 펴낸 작가 김동완이 10개월 동안 경북도내 수십 곳의 팔경과 구곡을 조사한 뒤 그중 시편이 전하고 흔적이 남아있는 ‘경’과 ‘굽이’를 선정해 발로 뛰며 쓴 기록이다.

이번에 발간된 ‘경북팔경구곡’은 팔경과 구곡을 노래한 창화시를 소재로 한 기록물이다. 시의 내용에 충실한 답사를 하며 지어낸 책이다. 지은이는 이를 두고 팔경은 ‘詩로 그린 산수山水’, 구곡은 ‘이념理念으로 빚어낸 산수山水’라고 규정했다. 지은이는 서로 가치가 충돌할 것 같은 팔경과 구곡을 ‘명승’이라는 동일한 주제로 접근했으며 이를 통해 명승을 관광지로만 인식하려는 현대인들에게 인문학적 가치를 더하려고 애를 썼다고 말했다.

특히 경주옥산구곡의 경우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경로의 아홉굽이를 비정해 혼란스러운데 지은이는 10여차례 답사와 문헌조사를 한 뒤 기존의 학설과 다른 굽이를 비정해 눈길을 끌었다. 지은이는 언젠가 옥산구곡에 대한 본격적이고 공식적인 조사가 이뤄질 때 다양한 의견이 테이블에 올라 걸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 속에 새로운 굽이를 제시했다고 밝혔다.

지은이 김동완은 “경북도내에 실존하고 있는 팔경과 구곡은 우리 지역의 소중한 인문학적 자산”이라며 “오늘 날 도로 개설과 건축물 건립등으로 경관이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상당수 팔경과 구곡은 명승으로서 손색이 없는 만큼 조선선비들의 수준높은 관광문화와 결합한 새로운 정신문화영역으로 승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