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윤혜주 수필가

처남남매간인 우씨와 남씨. 그들은 같은 지역에 살면서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하며 의좋은 인척으로 지낸다. 삶의 방식과 처지는 다르지만, 삶의 의미를 생산적인 일에 두고 개를 좋아하는 공통점은 특별나다. 사 년 전, 분양받아 온 형제 견 어리는 우씨가 버리는 남씨가 키우고 있다. 마치 사이좋게 살 것을 맹세한 서약서와도 같은 견들의 족보도 한 장씩 나눠 가졌다. 좋은 일, 사소한 일에도 축하와 감사하는 그들의 대화에 빠짐없이 개도 등장한다.

어느 날, 매사에 느긋하고 호탕한 성격인 우씨네 어리가 다쳤다. 미련한 곰 같은 어리도 문제지만 우씨의 책임도 컸다. 출근길 차 뒤에 드러누워 꼬리만 흔들어 배웅하는 어리를 우씨가 피해 갔어야 했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시동을 걸면 일어나 비키겠거니 하다가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그놈의 굼뜬 동작으로 인해 뒷다리 하나가 골절되는 대형 사고를 내고 만 것이다. 놀란 우씨가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갔기에 망정이지, 애지중지 예뻐라 만 할 뿐 운동 한번 제대로 시키지 못했던 우씨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처음부터 이렇듯 어리가 미련하고 게으른 문제견은 아니었다. 분양 때 첨부된 족보가 말해주듯 용맹스럽고 영리한 명견 중 명견이었다. 온순한 성격에 날렵한 자태, 총기(聰氣)로 반짝이는 눈, 주인을 따르는 충성심도 대단하다는 귀한 종(種)이었다. 그런 어리가 한적한 우씨네 전원주택에 살면서 변해 버린 것이었다. 둘만 사는 우씨 내외가 이른 아침 출근한 뒤면,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주고 간 하루치 사료를 일찌감치 바닥내고는 배를 깔고 늘어지게 자는 일이 일과가 되어 버렸다. 반짝여야 할 두 눈은 풀린 채 감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이빨을 드러내고 용맹스러움을 보여야 할 입도 먹을 때나 하품할 때만 벌린다. 마치 짖을 일이 없어 잊어버리기라도 했는지 짖는 소리도 들을 수 없으니 개 팔자 상팔자다.

한 편, 깡마른 체격에 불같은 성격인 남씨네 석(石)공장엔 버리가 살고 있다. 굵은 은빛 목 사리에 묶여서도 뛰어난 시각과 후각으로 넓은 공장을 철통방어한다. 돌 자르는 날카로운 톱날 소리,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드나드는 많은 사람과 차량으로 예민해진 버리다. 쌓인 스트레스 탓일까. 툭하면 으르렁거리며 짖고 덤빈다. 낯이 익은 사람조차 여차하면 이단 옆차기로 과잉 반응을 보인다. 최근에도 까칠한 버리를 몰랐던 손님이 가까이 갔다 물려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온순하고 순종적인 천성은 어디 가고 지나치게 괴팍하고 신경질적인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갔다. 만나기만 하면, 어리와 버리의 자랑에 열 올리던 우씨와 남씨가 아니던가. 언제부턴가 그 자랑이 한숨과 걱정으로 바뀌어 버렸다.

“형님, 저 게으르고 굼뜬 어리놈에게 집을 맡겨도 될지 모르겠어요.”

“말도 말게 이 사람아, 아무한테나 물고 늘어지는 버리 때문에 난처해서 죽겠네. ”

“그러면 형님. 그놈들을 서로 바꿔서 한번 키워 봅시다. ” 우씨의 제안에 남씨가 동의 한지 보름이나 됐을까. 우씨네 집 담장 너머엔 버리의 작은 눈이 반쯤 감겨 있고, 벙어리 같던 애물단지 어리는 석재공장에서 코를 실룩이며 킁킁대고 있었다.

만물은 평등하지 않고 환경에 적응해 살도록 만들어졌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살아남기 위해 주어진 환경에 민감하게 적응하고 반응하며 변한다. 그 변화에는 얻음과 잃음이 공존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그 적절함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은 모두의 몫이 되었다.

날씨의 변덕이 죽 끓듯 했다. 온도계를 가파르게 오르내리며 우리의 적응 능력을 시험하는 듯도 했다. 그뿐인가. 변화무상한 나날의 환경과 상황에도 적응해야 하니 현란해서 어지럽고 속도감에 피곤하여 현기증이 났다. 그러나 외부에 의해 덧그려지는 온갖 감정의 변화에 나만의 속도 조절이 필요할 때다. 내 미래는 앞에 있지, 뒤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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