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태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정태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의료계가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강행하는 정부와 정면 충돌하고 있다. 양측의 주장을 보면 의료 수요에 비해 의료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에는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해결 방법론을 둘러싸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둘러싼 논쟁으로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당장 증원해도 의료인 양성에는 최소 10년이 소요된다는 정부주장과 갑작스러운 증원은 의료생태의 공멸을 불러온다는 의료계의 계산법이 각기 다르다. 정부는 코로나 이후 의료수요가 급증했고, 취약지역이나 특정 전공의 부족이 심각하고, 인구대비 의료인의 수가 OECD의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근거를 든다. 동네의원의 의사 수가 늘어나면 국민사망률도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인용하고 있다. 그에 반해 의료계는 의사 수가 급증하면 동네의원은 다 망할 것이라는 우려와 비정상적인 의료 수가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하나는 병상에서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들이다. 그들의 불안과 아픔을 어찌할 것인가? 또 다른 하나는 정부와 의료계의 충돌로 인해 빚어질 의과대학과 의료인에 대한 인식이다. 어쩌면 이 문제가 더 심각할지 모른다. 의사는 우리 사회에서 ‘봉사’의 마스코트로 각인된 존경받는 직업이다. 한 명의 의사를 양성하는 데는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인내의 과정이 필요하다. 의대 입학도 어렵지만 6년이라는 학습과 실습과정도 쉽지 않다. 그리고 전공의 과정을 거쳐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데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이라 매 순간 긴장을 놓지 못하고 평생을 치료와 돌봄으로 살아간다. 의사가 존경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의대 증원문제로 인해 의사를 밥그릇 챙기기에 연연하는 황금충이라고 오인하는 상황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투자된 시간과 노력, 그리고 봉사의 마음이 무시되면서 자칫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을 가장 천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의사의 꿈을 좇는 많은 아이들은 방향과 희망을 잃게 되고 지역사회와 대한민국은 건강을 잃게 된다. 의대정원을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이 순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이유이다.

해결방책은 있다. 우선 당면한 문제를 문제 해결이 가능한 전문가에게 물어야 한다. 의대 정원을 증원하는 문제는 대학 소관이고, 의과대학교의 교수들이 현장 담당자들이다. 올해 증원 인원이 2000명이 된 것이 각 대학의 의대증원 수요를 파악해서 결정했다고 하지만 석연치 않다. 당장 2000명의 신입생을 추가로 받을 준비가 된 대학이 없다. 교육을 담당할 교수도 부족하고 교실도 실험실도 준비되지 못했다. 대학에 정원을 할당하고 예산을 배정하면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을 모르는 소치다. 의대 교수들의 일상을 보면 임상과 연구 그리고 교육으로 빈틈없는 일정을 보낸다. 임상교수들의 경우 새벽부터 회진을 하고 회의를 하고 환자를 맞고 강의를 한다. 학회에 참가하고 논문을 쓰는 시간도 필요하다. 하루종일 환자를 보느라 지쳐 땀에 절은 가운을 입은 채 연구실에 앉은 임상교수들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기초교실도 마찬가지다. 수시로 제기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빽빽한 실험장비와 도구들 사이를 오가고 있다. 지역 모 대학의 경우 기금교수를 포함하여 기초교실에 60여 명, 임상교실에 270여 명의 교수들이 있는데 학생지도와 연구, 임상 업무를 한다. 그들이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이다. 의료계와 의대, 의료체계를 관통하는 문제 해결의 혜안을 그들에게 물어야 한다. 그런데도 동맹휴업, 파업과 강경대응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연출될 때까지 의대 교수들에게 길을 묻지 않았다. 의료인의 총수를 늘려야 하는 문제와 신입생을 맞는 문제를 기초와 임상교수들이 함께 논의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통계와 명분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3’을 보면 한의사를 포함한 우리나라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적고, 보건의료노조 설문에는 의대정원 확대에 찬성한다는 응답도 89%에 이른다. 보건복지부가 의대정원 증원을 추진하는 근거로는 명분이 충분하다. 그러나 의대생과 의사 개인, 그리고 의료계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고 미래도 보장되어야 한다. 지역 의료계의 현실도 반영되어야 한다. 국립대 병원의 대다수가 권역책임 의료기관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인력 증원도 쉽지 않다. 경북대의 경우 기획재정부에 1,027명 증원을 요청했는데 189명(18.4%)이 승인되었다. 의료지원체계도 열악하고 시설과 장비가 노후화되어 경쟁력 및 재정구조가 악화된 최악의 상황이지만 방법이 없다. 국립대병원은 진료 시설 및 장비 출연금 예산 중 75%는 병원이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하고 적자보존 등 운영비에 대한 지원도 따로 없다. 특히 국립대병원의 의료수익 중 인건비 비중이 51.6%를 차지하기 때문에 수익성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인들에게만 희생을 요구할 수는 없다. 진료거부와 면허취소라는 막장드라마가 현실화되기 전에 현장을 담당하는 의대 교수들에게 길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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