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준 경영학 박사前 새마을운동 선진화TF위원
손을준 경영학 박사前 새마을운동 선진화TF위원

인간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목숨, 가족 안위, 나라 안보, 기업 경영, 재물과 권력 등이라고 할 것이다. 영웅이 아닌 일반인들은 자신의 출세나 건강, 부모와 자식의 부귀영화 등 소박한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한편 많은 사람은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큰 혜택을 보는 데도 나라 위한 일에는 인색하다. 나라라는 울타리가 없으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다는 100여 년 전 사실을 잊은 것일까?

인간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호국정신, 청안이씨 가문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남긴 호국정신은 어떤 것일까, 가슴에 담고자 한다. 청안이씨 시조 이양길(1312-1356)은 19세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승승장구하다가 임금에게 직언한 것이 문제(판관(경찰서장급)강등)되어 제주도로 전출되었다. 이후 제주도에서 원나라(중국) 세력(기철세력)이 반란(1356년 10월)을 일으켰을 때, 이양길이 앞장서서 싸우다가 순절(殉節)한 것이다. 공민왕은 이양길의 공적을 일등 공신으로 녹훈하고, 충원이라는 시호와 함께 포항 대잠에 식읍(食邑;토지)을 하사하게 되면서 이양길의 후손인 이종주 등이 정착하게 되었다.

포항 대잠에서 왕이 내린 식읍으로 생활하던 청안이씨 9가구는 유달리 나라 위한 충절의 정신을 이어왔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모 형제 등 온 가족이 왜적에 대항한 것이다. 이 결과 한국인 간첩이 있었던 것일까, 전체 9가구의 가족들까지 왜적들에 의해 학살(虐殺)을 당하였고, 전쟁에 의한 희생으로 9가구 모두 후손이 없어 대가 끊어졌으며,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땅도 다른 문중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청안이씨 가문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충절의 헌신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또 1592년 임진왜란 최초 의병장 이눌(1569-1599)은 이미 결혼한 상태였지만, 왜적과 싸워 나라를 지키느라 후손을 얻지 못했다. 이눌은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인 1599년 전쟁 등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다가 나라의 품으로 영면(永眠)하게 되었는데, 하늘의 뜻일까, 다행히 아내의 몸속에서는 이눌의 후손이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눌은 위태로운 나라에는 30년의 삶을 헌신하였고, 굶주리는 백성들에게는 먹을 양식을 나누어 주었으며, 청소년에게는 지식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등 대한민국에 정의의 빛을 남긴 위대한 영웅이시다.

인류의 정의와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 이눌 장수를 비롯한 청안이씨 가문의 빛나는 호국충절의 소중한 정신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가슴에 담는 실천을 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