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모든 장기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세포이며, 세포는 각 장기에서 주어진 기본 업무인 단백질(효소)을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세포의 핵은 그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유전정보와 개체를 다음 세대로 승계를 시킬 DNA를 가지고 있다.

우선,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은 세포주기 5과정 중에서 중기(interphase)에 이뤄진다. 중기의 DNA는 염색질(chromatin)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세포분열 시 정확하게 DNA를 양분하기 위해 46개의 염색체(chromosome)로 묶여 있는 형태와는 구별이 된다. 즉, 이사를 자주 가는 가정살림과 비교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이사를 가기 위해서는 살림도구를 용품별로 각각 이불과 옷가지, 그릇과 음식물, 신발, 전기기구, 화분 등으로 분리해서 묶음 포장하면 쉬워진다. 이사가 끝나면 포장지를 뜯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들을 풀어서 다시 사용하기 쉽게 세팅하고 밥도 짓고 잠도 자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의학 유전학을 연구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섬세한 기전들이 우리가 생활하는 것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세포나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것이 같은 진리인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의 세포에서 두 개의 세포로 나눠진 후 염색체는 실타래가 풀리듯 다시 한 줄(이중 가닥의 나선 모양; double strand DNA helix)로 풀려서 다음 세포 분열기까지 단백질 만드는 작업과 다음 세포분열을 위해서 DNA를 2배로 늘리는 작업을 한다. 풀린 DNA는 작용효소에 의해서 mRNA, tRNA 형태로 전사(transcription), 번역(translation)의 과정을 거쳐 4개의 핵산(adenine, guanine, cytosine, thymine)이 3개씩 조합(triplet)을 이룬다. 총 64개의 조합(4³)은 리보솜에서 아미노산을 만들고 이것이 여러 개 연결이 되면 그 세포가 필요로 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그 세포의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게 된다. 지금까지 밝혀진 아미노산은 총 20개이며 이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게 수많은 단백질(효소, 호르몬 등)들이다. 각 단백질은 특이한 3차원적 구조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접촉할 물질과 작용이 용이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각 구성성분들 사이의 임계거리(critical distance)에 의해서 형성이 된다니 어느 것 하나 아무렇게나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게 너무나 경이롭다.

생명체의 모든 활동은 외부로부터 섭취한 에너지에 의해서 시작된다. 우리가 음식물로 먹는 여러 종류의 육류, 해산물, 지방질, 탄수화물, 야채, 과일 견과류 등이 섭취되면 음식물은 입의 침샘에서 분비되는 소화효소(아밀라아제)에 의해서 함께 잘 씹혀서 식도를 거쳐 위(stomach)로 내려 보내어 위에서 음식물의 분해과정을 돕게 된다. 위에서는 위액, 염산, 펩신의 분비로 음식물들을 더욱 잘게 분해해서 장에서의 흡수를 도운다. 소장에서는 간(liver)에서 만들어지고 쓸개(gall bladder)에서 분비되는 담즙과 췌장(pancreas)에서 만들어진 소화액인 아밀라아제, 리파아제, 트립신은 각각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분해하여 대부분의 영양소를 흡수하게 된다. 흡수된 영양소들은 간으로 옮겨져서 각 종 효소의 작용으로 활용되고 저장된다. 이 모든 분해과정에 해당되는 물질이 효소이며 이들은 각 장기의 세포에서 해당 효소를 생산하고 분비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흡수된 영양소들은 활용하기 좋게, 저장하기 좋게, 여러 단계의 분해 과정을 거쳐 최종 물질로 바뀌게 된다.

다시 또 1986년 UCLA에 연수 갔을 때 기억을 되 살려본다. 1년 동안 혼자 생활할 살림꾸러미를 어린이도 앉으면 들어 갈 군인 용 큰 가방에 꾸겨 넣었다. 특이한 내용물에는 평소에 베고 자던 베개와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김치(기내에서 터질 수 있다는)가 한 단지 포함되어 있었다. LA공항에 내려서 우선은 지인 집 주소(Pasadena 시)로 택시를 타고 갔다. 그 당시의 돈으로 팁 포함 $68이었으니 공항에서 꽤나 멀었다. 낯선 문화 환경에서 모든 것을 지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숙소를 구할 때 우리의 시스템과는 다르게 길거리에 복덕방(부동산 공인중개소)이란 상가는 없고 아파트 또는 집마다 입구에 ‘For Rent, Vacancy’와 전화번호만 표시한 점이 달랐다. 첫 번째 조건은 UCLA병원 바로 옆에 방을 구해서 출퇴근만을 위할 생각이었다. 조그만 방(studio; 침실이 따로 없고 부엌, 거실, 욕조가 한 공간 내에 있는 최소 주거 단위)이지만 걸어서 연구실까지 5분이고 냉장고 포함해서 렌트 비로 월 $745로써 아주 비쌌다. 그러나 차 없어도 출퇴근이 가능했고 안전지역이라 숙소로 정하였다. 렌트 비는 선불이며 보증금 식으로 마지막 달 월세를 함께 내야 했다. 장기 여행 시 가지고 갈 달러($) 지침금이 월 $1,000로 정착금 포함해서 $8,000이 상한선이었으니, 벌써 가져 간 돈의 1/5이 수중에서 사라졌다. 국내에서도 돈의 중요성을 모르던 바가 아니었지만, 해외에서는 바짝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밥솥과 주방용기, 전화기 등 들어 갈 목돈이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 주말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1주일에 한번 마트에 가는데 버스를 이용하니 힘이 많이 들었다. 자가용이 발인 미국에서 필수품이라고 절실하게 느꼈다. 하는 수 없이 $4,200짜리 미국산 승용차를 중고로 구매했다. 휘발유 값은 한국에 비해서 쌌으나 대륙이 넓어서 유류비는 비슷하게 지출되었다. 그러나 주말 2일(그 당시에 미국은 주 5일 근무)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어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가 있었다. 주로 간 곳은 1번 태평양 해안 국도를 따라 위쪽으로 올라가면 왼쪽편으로 태평양 넘어 고국의 편을 보면서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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