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원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장
한희원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장

며칠 후면 삼일절이다. 독립운동 함성의 시발점이 경북 안동이다. 1894년 6월 21일 일본은 경복궁을 침범해 고종을 사로잡는 변란을 일으켰다. 유생 서상철은 의병 궐기를 호소했다(호서충의서상철포고문). 안동이 일어섰다. 안동의 항거가 항일독립운동의 출발점이었고 후일 3·1운동의 동력이 되었다.

선열들은 목숨까지 내놓았다. 왜 그랬을까. 국가를 빼앗겨서? 당시 일반인의 마음에 국가를 빼앗긴 것이 그렇게 분통했을까? 그때는 민주국가도 아니었다. 왕조국가였다. 국민의 나라가 아니라 임금 한 사람의 나라였다. 조선, 대한제국 전체의 땅은 이씨 왕조 소유였던 때다. 냉정히 말하면 일반인은 빼앗길 땅 한 평도 없었다. 민초 25%가 굶어 죽는 나라로 조선은 기근의 나라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굶어 죽는 시체가 길에 가득 찼다.”는 기록이 많다. 일본제국은 수탈을 위함이기는 하지만 발전소도 건설하고 기차도 부설해주고 백화점도 짓고, 광산도 개발했다. 땅을 파서 살던 민족에게 광업, 제조업, 상업의 일자리도 만들어주었다. 그런데도 민초들은 왜 일본의 통치를 거부하고 목숨을 걸고 독립을 외쳤을까?

유교의 시조인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에 주나라의 전통이 망가지고 깨어지는 것에 대해 통탄해 했다. 유교는 선조를 공경하고, 전통을 이어가고, 만백성의 부모인 왕과 왕비를 내 부모로 생각한다. 대한제국 말기에 임금은 엉터리였다. 전혀 국제정세를 읽지 못해서 국민을 도탄에 빠뜨렸다. 대한제국은 머지않은 장래에 일본이나 중국이나 러시아에 잡아먹히리라는 것이 세계역사가들의 인식이었다. 선수를 친 일제가 집어삼켰다.

유교는 조선왕조의 정신적 이념이었다. 부모가 아무리 잘못해도 부모 대접이나 공양을 한다. 부모를 살리려고 부모의 똥도 마다치 않고 먹어보고 병세를 진단하고, 허벅지 살을 잘라서 먹이고, 한겨울에 산딸기가 먹고 싶다는 노모의 청을 거절 못 하고 집을 나서서 산속에서 딸기를 찾아 헤매는 미담을 가진 백성이 우리였다.

3·1운동으로 일제에 항거한 것은 단지 영토를 빼앗긴 것이 분통해서가 아니다. 만백성의 부모이자 나라의 최고 어른인 임금이 일제에 의해 수모를 당하는 것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선조들의 혼이 소멸되고, 고유문화와 전통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신적 부모인 임금이 일제에 휘둘리고 선조들이 일궈온 나라의 전통과 문화가 파괴되는 것을 18세 어린 나이에도 참고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3·1 독립운동의 진정한 가치는 명백하다. 전통문화와 선열들의 혼 그리고 정신적 부모와 나라를 지켜내고자 한 외침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세태는 어떤가? 동성애를 주장하면서 이름도 별난 퀴어축제를 도시 한복판에서 열 권리를 주장한다. 동성동본결혼도 요구한다. 호주제도도 쉽게 포기한다. 우리는 자녀의 성도 부모 가운데 마음껏 선택하자고 한다. 그런 것을 인권이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전통은 결코, 파괴의 대상이 아니다. 미국은 아직도 결혼하면 여자는 남성의 성을 따른다.

경상북도는 현대판 독립운동에서도 선구자가 되어 나라를 구하는 성지가 되기를 기원한다. 거짓말과 선동하는 정치 모리배나 범죄자까지 정치를 쉽게 하는 현상은 삼일정신에 반한다. 이철우 지사는 현재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저출생과 전쟁을 선포하고 지휘하고 있다. 또한, 과거를 추모하고 애도하던 독립운동기념관 단계를 넘어서 호국보훈재단의 단계로 도약하여 미래지향적 호국정신으로 자유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호국보훈재단의 필요성이다. 삼일운동 정신으로 저출생을 극복하고 호국보훈재단과 함께 경북이 현대판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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