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전이 필요했던 A씨는 2022년 10월 인터넷 대출 사이트에서 상담을 받으면서 남긴 휴대전화 번호로 SNS 문자를 받았다. 저축은행 상담사로 자신을 소개한 메신저피싱범은 “대출을 받으려면 신용등급을 올려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출 상환 실적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A씨는 카드론으로 300여만 원을 대출받고 가상계좌를 만들어 메신저피싱범이 지정한 다른 은행계좌로 송금했고, 이 금액을 다시 입금받으면 또다시 송금하는 일을 반복했다.

70대 B씨는 딸을 사칭한 메시지 한 통을 받았는데, “휴대전화 액정이 깨져서 보험처리하는 데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딸이 보낸 메시지로 착각한 B씨는 신분증을 사진 찍어 메시지로 전송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휴대전화에 원격제어가 가능한 어플이 설치됨과 동시에 오픈뱅킹 계좌가 개설됐다. 곧이어 B씨의 은행 계좌에서 A씨의 계좌로 700만 원이 이체됐다.

B씨는 딸과 전화통화를 통해 자신이 메신저피싱범에게 속은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A씨의 계좌로 송금된 700만 원은 메신저피싱범의 지시에 의해 A씨의 계좌에서 제 3의 계좌로 이체된 뒤였다.

B씨는 수사기관에 피해사실을 신고했으나 메신저피싱범은 잡히지 않았다. 경찰은 명의를 빌려준 A씨에 대해 범죄혐의가 없는 것으로 보고 피의자로 입건하지 않았다.

결국, B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공단은 A씨가 대출을 위해 메신저피싱범과 수십차례 통화하고 자신의 계좌에 송금된 돈을 시키는 대로 반복 이체한 비정상 금융거래에 주목했다. A씨가 범죄 가담 의도는 없을지라도 부주의로 인해 범죄행위를 도운 점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봤다.

그래서 B씨가 입은 피해금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A씨는 “나도 카드대출금 300만 원을 사기당했다”며 범죄와 무관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가 “비정상적인 금융거래임을 인식할 수 있음에도 계좌정보를 제공했고, 사기 범죄단에게 돈이 전달되도록 과실로 사기 범행을 방조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B씨도 경솔하게 신분증 등을 제공한 과실을 참작해 A씨의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B씨의 소송을 대리한 공단 소속 구태환 변호사는 “대출을 빌미로 계좌정보와 함께 이체 등을 요구하는 형태의 메신저피싱이 늘고 있다”며 “비정상 금융거래에 가담하면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고 이를 배상해야 함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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