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명예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명예교수

소설의 양 극단은 역사(歷史)와 자전(自傳)입니다. 보통 소설가들은 그 중간 어디서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무엇을 소재로 삼든 하는 건 결국 자기 이야기입니다. 한 번 본격적으로 역사소설을 써본 사람은 자기의 작은 이야기들로 소설을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역사의 지평 위에서 대어(大漁)를 낚다가 일상의 갯가에서 피라미들을 건지려니 통 낚시의 재미가 없어지는 거지요. 대어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대어가 되는 착각을 합니다. 그 맛이 보통 황홀한 것이 아닙니다. 피라미 낚시에서 재미를 찾는 이들에게도 황홀이 없는 건 아닙니다. 굴곡 많은 자전을 채에 잘 걸러서 보편적 비극이나 인생론적 성찰을 이끌어 내는 게 그들의 장기입니다. 공자 시대 이래로 사실 소설의 본령이 원래 그런 것이긴 했습니다. 그들 피라미 작가들은 ‘소설 쓴다’라는 말이 ‘철학 한다’, ‘예술 한다’와 동의어가 된다고 여깁니다. 물론 그런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철학이나 예술은 자기 인생을 솔직하게 횟감으로 올려야 제맛이 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얼마 전 SNS(페이스북)에서 ‘다금바리와 돌돔’(하응백)이라는 낚시론을 봤습니다. 문사(文士)이면서 조사(釣士)인 필자의 해박한 낚시 지식이 또 한 편의 작은 ‘자산어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는 글이지만(쫄깃쫄깃한 글맛이 일품입니다) 이 글 속의 다금바리를 ‘역사소설’로 돌돔을 ‘자전소설’로 옮겨서 읽어보니 소설 창작 일반에 관련된 통찰로 봐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고급바다 생선의 대명사로 다금바리와 돌돔을 꼽는다. 다금바리는 표준명은 자바리. 제주에서는 구문쟁이라 부르며, 잡기가 매우 어려운 생선이고 거의 잡히지 않는 귀한 생선이다. 그런데 제주에서도 여러 식당에서 다금바리를 판다. 보통사람들은 양식 능성어와 다금바리를 외형으로 봐도 잘 구분 못한다. 능성어는 키로에 5만 원에서 7만 원이면 먹을 수 있고 다금바리는 2~30만원 이상이다. 수족관에 있을 때 봐도 구분하기 힘든데, 이걸 썰어 놓으면, 더욱 판별하기 어렵다. 나도 제주에서 서너 번은 다금바리를 먹었다. 그중 한 번 빼고는 다 다금바리가 아니었던듯 하다. <중략> 돌돔 회맛은 사각거리는 투명한 맛이다. 고소함도 있다. 역시 돌돔이다. 잘 손질하면 돌돔은 거의 버릴 게 없다. 아가미와 지느러미와 내장 중 곱만 제거하면 된다. 쓸개는 소주에 타서 먹고. 껍질은 비늘을 긁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바로 얼음물에 풍덩, 물기 제거해 참기름 소금에 찍어 먹으면, 왜 돌돔 돌돔 하는지 바로 이해가 된다. 고들고들 고소하다. 그리고 마지막은 머리와 뼈, 내장을 넣고 끓인 돌돔 맑은탕. 이게 또 끝내준다. 무, 마늘, 파에 소금간만 해야 한다. 이게 돌돔 풀코스다. 돌돔 쓸개주, 회, 껍질 숙회, 맑은탕…(하응백, ‘다금바리와 돌돔’, 페이스북 2024. 2. 1)


“수족관에 있을 때 봐도 구분하기 힘든데, 이걸 썰어 놓으면, 더욱 판별하기 어렵다”는 시중에서 횡행하는 역사소설을 두고 하는 말로, “돌돔 회 맛은 사각거리는 투명한 맛이다. 고소함도 있다. 역시 돌돔이다” 이하의 언명은 맛깔스런 자전소설을 두고 하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애국과 애족을 내세우는 역사소설이라면서 고작 ‘국뽕(극단적 민족주의)’이나 자극해서 돈벌이를 하려는 것들은 아무리 맛이 진짜와 비슷해도 가짜 신세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소략한 개인의 일생을 담은 것에 불과해도 진정성 있는 자전소설에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습니다. 요즘 <건국전쟁>, <파묘> 같은 다큐멘터리나 창작 영화를 두고 보수, 진보의 이데올로기 대리전을 벌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다금바리든 돌돔이든 다 자기 세상이 있는 물고기들입니다. 세상 나쁜 일은 가짜를 가지고 진짜 행세를 하는 장사입니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는, 장사든 나라든, 미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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