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의 화장한 인물
국립중앙박물관이 고고학과 역사학, 미술사학, 보존과학 등 분야별로 심도 깊은 조사·연구 성과를 수록한 정기간행 학술지인 ‘고고학지’제29집, ‘미술자료’제104호, ‘박물관 보존과학’제30집을 발간했다. 이번에 나온 논문들은 고구려 주제를 비롯해 국립박물관 소장품의 학술적 가치를 새롭게 규명한 내용이 많아 앞으로 관련 분야 연구에 다양하게 활용되며 논의를 진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고구려 특집호로 구성한 ‘고고학지’제29집에는 논문 3편과 자료 1편이 게재됐다. 이 글들은 고구려의 도성제와 영토 확장, 고분벽화, 광개토대왕릉비 등 핵심 연구 분야를 다루고 있다. 학계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관심을 가지는 내용으로,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이 추진하는 선사고대관 고구려실 개편의 기초자료로도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성주사 본존불 발가락편
먼저 ‘고구려 전기 평양도성의 평지왕성에 대한 고고학적논의’(강현숙, 동국대학교)는 일제강점기에 평양 일대에서 수집된 연꽃무늬 수막새, 토기편, 무덤 등 고고자료를 비교 검토해 고구려 도성과 왕성의 위치를 추정했다. 427년(장수왕 15) 평양으로 천도한 직후 짧은 기간 동안 토성리 일대를 평양도성 건설의 전진 기지이자 평지왕성으로 사용하다가 안학궁으로 옮겨갔을 것으로 보는 견해를 새롭게 제시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평양 청암리 출토 ‘西寺(서사)’명 토기편은 왕궁이 청암리토성 밖에 있었을 가능성을 암시해 주목된다(도1-1).

‘고구려의 한강유역 진출과 경영’(양시은, 충북대학교)은 5~6세기대 고구려의 남진 과정과 이에 따른 한강유역 경영 양상을 고고·문헌자료로 살펴본 논고이다. 백제 왕성이었던 서울 몽촌토성에서 확인되는 고구려 문화층과 고구려에 의한 대대적인 개축 흔적에서 몽촌토성이 고구려의 남진 사령부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안성 도기동 산성 및 용인 일대의 고고학적 양상을 근거로 고구려가 경기 남부 지역까지 안정적으로 영역화하여 경영했을 것으로 보았다.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인의 화장과 화장품’(전호태, 울산대학교)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표현된 다양한 인물들의 얼굴 화장을 검토하고 시기별 특징과 변화 양상을 살펴본 흥미로운 논고이다. 시각자료인 벽화를 분석하고 중국측 기록을 상호 비교 검토해 고구려인의 다채로웠던 화장 문화를 구체적으로 논했다(도1-2). 이 논문은 그동안 인물풍속도, 장식무늬, 사신도의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고구려 고분벽화의 연구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자료로는 ‘광개토대왕릉비 관련 중국 자료 역주’(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가 있다. 이 글은 19세기 말 이후 광개토대왕릉비 탁본의 발견과 유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 중 청말~중화민국 초기의 기록을 대상으로 선별해 번역하고 해설한 것이다. 이 글들은 비석의 발견 시점과 탁본 제작, 유통 과정을 살펴보는 데 널리 활용되는 기초자료들이어서 향후 광개토대왕릉비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미술사학 전문 학술지인 ‘미술자료’제104호에는 연구논문 4편이 실렸다. 이번 호의 글들은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불교미술사와 도자사의 여러 주제들을 기존 성과와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차별화된 것이 특징이다.

‘성주사 창건과 철불 조성 연구’(강건우, 국립익산박물관)은 통일신라 9세기 선종(禪宗) 승려의 비문(碑文)과 문헌기록, 발굴자료 등을 근거로 충청남도 보령에 터가 전하는 성주사(聖住寺)의 창건 배경과 주존으로 모셨던 철불의 원형 및 봉안 장소를 추정했다. 현재 전하는 자료에서 성주사 철불은 2구가 확인된다. 손가락·발가락편이 포함된 7편의 철불편(국립부여박물관 소장)과 대좌 크기를 비교해 주존불은 금당에 봉안된 대형 노사나불상(盧舍那佛像)이고, 다른 1구는 삼천불전에 봉안된 중형 불상으로 추정했다(도2-1). 이 논문은 그동안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성주사 철불의 복원적 고찰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청자 상감 진언명 편
‘고려 후기 범자 진언명 상감청자의 해석과 의미’(이준광, 리움미술관)은 기존에 ‘범자(梵字)명 상감청자’로 불리던 일군의 상감청자를 불교적 맥락에서 조명한 글이다. 청자에 상감된 범자는 진언(眞言: 부처와 보살의 덕이나 가르침을 담은 주문)을 이루는 글자들로, 지옥에서 벗어나거나 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도2-2). 범자 진언명 상감청자는 주로 고려 왕실용 청자 생산지로 알려진 전라남도 강진 사당리 23호 요지와 ‘가’구역에서 출토됐다. 이를 근거로 이 청자들은 왕실 혹은 그 영향력이 미쳤던 사찰에서 행해진 죽은 자를 위한 의식의 단(壇)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했다. 아울러 범자 진언명 상감청자의 제작시기를 13세기 말∼14세기 전반으로 편년하였고, 이를 고려 후기 사회에 밀교(密敎)가 널리 확산됐던 증거로 해석했다.

‘고려 왕실의 연례 문화와 청자 주기(酒器)의 상징적 의미: 왕권과 주기(酒器)’(김윤정, 고려대학교)에서는 술을 담는 청자 주기의 형태에 주목하여 왕실이 개최한 각종 잔치인 연례(宴禮)와의 관계를 검토하고, 조형의 상징성과 시기에 따른 변화를 살펴보았다. 왕실 연례는 국왕과 신하 간의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국왕의 권위와 능력을 보여주는 통치 행위였다. 이 논문은 ‘고려사’의 연례 기록을 분석하고, 청자 주자와 잔에 사용된 유교적·도교적 소재가 국왕에 대한 송축과 충성,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연례의 목적을 시각화한 것으로 추정했다. 예컨대, 국립중앙박물관의 12세기 ‘청자 인물형 주자’는 손에 신선의 열매인 복숭아를 받든 모습을 하고 있는데(도2-3), 이를 ‘고려사’악지(樂志)에 나오는 서왕모(西王母)가 국왕에게 불로장생의 복숭아를 바치는 노래인 헌선도(獻仙桃)의 내용과 비슷하다고 연결지었다.

‘원각사종(圓覺寺鐘)에서 보신각종(普信閣鍾)으로 ―조선시대 탈불교화의 일례―’(남동신, 서울대학교)는 불교를 숭상했던 세조(재위 1455∼1468)가 원각사를 건립하면서 1468년 조성한 범종(梵鐘)인 원각사종의 성격이 바뀌어간 과정을 역사적 관점으로 접근했다(도2-4). 이 종은 연산군대인 1504년 원각사가 폐사된 후 1536년에 남대문으로 옮겨져 1594년까지 방치됐다가 1619년 종루종[훗날의 보신각종]으로 변화해 조종(朝鍾)의 역할을 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원각사종의 불교적 요소에 인위적인 훼손이 가해졌음에 주목하고, 원각사종[범종]에서 보신각종[조종]으로의 변신은 종소리의 상징성이 부처의 소리에서 임금의 소리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또한 이는 조선 전 시기에 걸쳐 거의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난 ‘불교지우기’곧 탈(脫)불교화를 보여주는 것이라 결론지었다.

보존과학 학술지인 ‘박물관 보존과학’ 제30집에는 총 7편의 논문이 수록됐다. 그중 국립박물관 소장품을 대상으로 한 글들을 살펴보면, 먼저 ‘조선시대 장보관(章甫冠)의 보존처리’(이혜린, 박승원)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포제(布製) 관모를 보존처리 하면서 양식과 제작방법, 명칭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본 논고이다(도3-1, 3-2). 이 관모는 조선시대 동일한 유형의 관모와 형태가 비슷하지만, 손바느질과 재봉틀 바느질이 혼합돼 있어 제작 시기를 1900년대 초반으로 보았다. 아울러 각종 문헌기록, 초상화, 실물과 다각적으로 비교하고 이 포제 관모가 조선시대 유생들이 평상복을 입을 때 착용했던 “장보관”과 유사하다고 판단해 이 관모의 명칭을 ‘장보관’이라고 제시했다.

‘초분광영상 분석을 활용한 김정희 필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의 과학적 조사’(고수린, 박진호, 이수진)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손창근 선생으로부터 기증받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불이선란도’를 대상으로 초분광영상(HyperSpectral Imaging, HSI) 분석 등의 과학적 방법을 사용해 그림에 찍힌 인장(印章) 15과(顆)와 재료적 특성을 분석했다(도3-3). 그 결과 인주는 크게 바륨(Ba) 성분이 들어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됐고, 날인된 인장 주변에 번진 자국인 인영(印影)은 추사가 찍은 5과에서만 확인됐다. 이로써 그림에 찍힌 인장들은 시기에 따라 성분과 재료에 차이가 있음을 밝혔다. 이밖에도 결실된 부분을 보존처리하거나 종이를 덧댄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분광영상 분석은 X선 형광(X-ray Fluorescence, XRF) 분석을 비롯한 기존의 다른 비파괴 분석방법의 한계를 극복하는 신기술로서, 향후 서화작품에 대한 분석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연구되면 더 많은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금령총 출토 장식편의 재질 규명’(곽홍인, 이규혜, 신승철, 양석진)은 일제강점기에 경주 금령총(신라 6세기)에서 출토된 소형 백색 물체의 재질과 성격을 밝힌 논문이다(도3-4). 다양한 비파괴 분석 조사를 진행한 결과, 백색 물체의 주요 구성물질은 탄산칼슘을 주성분으로 하는 아라고나이트(Aragonite)로 확인됐다. 이에 더해 나노 CT로 조사해보니 표면에 등고선과 같은 패턴이 겹겹이 반복되어 있어 ‘진주’의 성장판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고대 유물 중 진주는 백제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 출토 사리장엄구 일부와 경주 석가탑 사리기 발견품 등으로 희소한 편이다. 금령총 출토품이 진주임을 규명한 이번 조사 결과는 삼국시대의 국제 교역물품 연구와 관련해 학계에 신자료 제공의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

‘고고학지’, ‘미술자료’, ‘박물관 보존과학’의 모든 논문과 목차는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의 ‘학술·출판 > 정기간행물’에서 내려 받을 수 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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