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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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엽서를 띄우기 위해 나는 멀리 떠나네 여행지에서 우리는 아름답고
기묘한 엽서를 사 오곤 했는데 돌이켜보니 서로에게 엽서를 쓴 적은 없었네
엽서에 나는 뒤늦은 사랑을 쓰면서 동시에 엽서에 대해 쓰네 오, 정말, 엽서에
상처를 내는 펜촉, 상처를 내지 않고는 이 엽서를 다시 살게 할 수 없다는 것
을 이제 나는 아네 우리 안의 어딘가가 이미 죽어 있었다면 우리는 더 적절히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까 서로에게 덜 기대하고 서로를 덜 파괴하면서 말
이야 그러나 상처를 내지 않고는 사랑을 쓸 수 없네 부서져 새로 태어나지 않
고는 말이야 슬프지 않은 엽서를 찾아 나는 멀리 떠나네 이 세상에 없는 엽서
를 찾아서 떠나네 다시 사랑의 취기가, 도취의 파도가 소인으로 찍히는 것을
상상하면서

[감상] “서로에게 덜 기대하고 서로를 덜 파괴하면서”, “상처를 내지 않고는 사랑을 쓸 수 없네” 따위의 ‘취기’, ‘도취’는 접어두고, 1586년(병술년) 남편이 죽자, 그의 아내가 남편에게 쓴 한글 편지(원이 아버지께)를 소개한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에 대한 당신의 마음과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이 어떠했던가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가 없어요.” 죽음을 넘어, 450년을 넘어, 어떤 편지는 계속 쓰인다.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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