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이유 없이도 희망할 수 있는 계절, 봄이다.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살에 폴폴 꽃향기 난다. 순도 높은 희망을 싹 틔우라는 하늘의 뜻에 충실한 자연이 순응 중이다. 봄은 지상의 모든 꽃을 피우려 겨우내 땅속 근심을 오롯이 품은 뒤, 분주하게 초록의 움을 틔우고 있다. 봄에 느끼는 자연의 섭리가 오달진 이유다. 마침내 꽃을 피우려는 봄의 간절함은 바람의 냄새와 온도를 높여 숨탄것들의 물오름으로 숨이 차다. 곧 잔잔하게 다가와 오래 수런거릴 봄은 기억하지 못할 것을 기억하게 하고, 잃어가는 기억도 찾아오게 할 것이다.

지난 설을 저만치 앞두고 불현듯 강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잠자기 전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시장 안 단골 생선가게 할머니다. 시간이 품고 있는 가장 뜨거운 에너지를 내 글 속에 담게 해준 은인이기도 하다. 그 은혜 갚고 싶었는데 여태 갚지 못했다. 마치 편지를 받기만 하고 답장하지 못한 꼴이다. 지금도 그 습관으로 잘 견디고 계실까. 한 문장이라도 더 쓰고 싶은 내 안의 투덜거림을 멈추고 집을 나섰다.

한눈에 반할 때가 있다. 처음 본 그 순간에 결정된다. 마음이 덜컥 기우는 건 의외로 순식간이다. 이유는 없다. 이유를 따져서 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그루 나목(裸木)처럼 시장바닥에서 일생 비릿한 생선과 함께 살아온 할머니의 조붓한 삶이, 생선을 대하는 그녀만의 질박한 듯 어련 무던한 모습이 그랬다. 할머니의 한쪽 손은 조막손이다. 그러나 칼을 잡은 오른손을 거드는 조막손의 놀림은 절망적 상황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을 감탄 그 자체다.

풋 각시 시절부터 제사나 명절 때 할머니의 가게를 드나들었다. 촘촘한 난전 가게에서 할머니는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 커다란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긴 팔의 휘두름은 에너지로 이어져 할머니가 감내하고 있는 삶의 질량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자의 일생’이 노동가(勞動歌)로 읊조림처럼 곁들여지면 돌덩이 같은 동태는 일시에 절단(切斷)나고 하얀 속살은 포로 나타났다. 굵은 상어 덩어리조차도 한 치 오차 없이 썰어내 산적으로 가지런히 꼬치에 끼워졌다.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마음과 쓰러지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이 함께 들 때면, 나는 손에 꼭 쥐고 읽는 한 편의 시 같은 할머니를 찾아 나서곤 했다.

그때마다 슬며시 빨간 플라스틱 의자를 건네주고는 내 하소연 보따리에 추임새를 넣어주기도, 앞서 사는 여인네의 지혜를 슬쩍 던져주기도, 속사포 같은 나무람과 다독임도 거침없었던 할머니. 시련을 열정으로 바꾸는 ‘말의 부적’으로 좌절감에 동아줄을 던져준 이였다.

예천이라는 내륙지방에서 태어나 죽은 생선 눈 만 보다가, 시집온 포항에서 살아있는 생선 눈을 마주하면서 생선 장사를 시작했다는 할머니였다. 근래 칼갈이를 도와주던 어부였던 할아버지가 먼저 떠나면서 부쩍 쇠약해지셨다. 행여 누군가 자신의 조막손을 무시할세라 더 힘껏 칼을 내리쳤다는 할머니. 그 강인함을 무기로 장착해 범접할 수 없는 자신만의 황혼 인생 서사를 쓰고 있다. 한 여인의 깊고도 긴 그 한 호흡을 닮고 싶었다.

할머니의 쇠락한 모습은 도드라져 보였다. 앉아 있는 시간이 길었다. 작년보다 머리와 치아는 더 빠진 듯했고 혈색마저 어두웠다. 나는 동태 두 마리를 포로, 산적 4 꼬지를 주문한 후, 식지 않은 붕어빵 봉지를 내밀었다. 그리곤 곧 수술할 거라는 할머니의 아픈 무릎 이야기를 30분 정도 들었다. 부쩍 심해진 내 허리통증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산다는 건 언제나 처절한 것. 물에 빠진 이상 젖을 수밖에 없듯 태어난 이상 살아갈 수밖에 없다. 때론 쓰러지는 것보다 버티는 게, 우는 것보다 울지 않는 게 더 힘들 때도 있다. 우리 모두 타인의 뒷모습에 우리의 앞 얼굴을 포개며 살아간다고 했던가. 나는 자처한 가난은 아니지만 궁핍도 하나의 삶이라는 할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오랜 단골의 안부도 함께 담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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