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설] 이강인을 변호함

철학자 이성민이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한 ‘말 놓을 용기’(민음사)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선후배 사이의 말 놓기 실험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존비어 관계나 존댓말 관계를 공식 표준으로 삼고 있는 한국말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과, 평어 또래 관계를 공식 표준으로 삼고 있는 서양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식 구조를 철학적으로 분석했다. 

한국과 다르게 서구 문화권에서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수평적 인간관계가 보편적이다. 선배도 ‘You’, 후배도 ‘You’다. 한국어처럼 ‘~님’이니 ‘~십시오’니 하는 존댓말이 없다. 사고방식과 문화가 언어에 반영되고, 언어는 다시 사람 사이의 소통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그는 한국어의 존비어가 소통을 저해할 뿐 아니라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가 말한 ‘개인 생활의 민주화’에까지 영향을 준다고 봤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은 뒤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이 정신력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부족이었다. 히딩크는 선수들이 사용하는 존칭어가 소통에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캐치했던 것이다. 히딩크는 선후배 간의 심리적 간격으로 경기를 망치는 일이 없게 경기 중에 선배 이름을 존칭 없이 부르게 했다. 그 결과 경기력이 크게 향상돼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다.

지난 2월 아시안컵 준결승 전날 축구 국가대표팀의 물리적 충돌도 언어와 문화적 이질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손흥민의 목덜미 제지를 뿌리쳤다는 이강인은 축구 신동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강인은 가족과 함께 스페인에 정착해 살았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한다. 언어적 측면을 고려하면 이강인의 행동을 용납할 공간이 생긴다. 황선홍 대표팀 감독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강인을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 소집했다. 어느 때보다 황 감독의 섬세한 지도가 필요하다. 이강인은 한국의 선후배 문화를 좀 더 이해하고 공감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지는 태국과 경기에서 손흥민과 이강인이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 지 기대가 크다.

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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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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