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명예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명예교수

본격적인 선거철을 맞이해서 오랜만에 뉴스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꼭 무협지를 보는 느낌입니다.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공천을 따낸 유력 후보들이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나 낙마하는 것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거의 팔부 능선까지 올랐는데 과거의 행실이나 발언이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되어 속수무책으로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것을 몇 건이나 보게 됩니다. 제 지역구(사는 곳)에서도 그런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달포 전 동네 신협 이사장 뽑는 행사에 갔더니 선거운동을 하러 나온 예비 선량(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예외 없이 당선되는 곳이니 그렇게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건네는 명함을 보니 우리 부부의 초등학교 십여 년 후배였습니다. 잘해 보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간 아내에게 “저 친구가 표정이 좋은 걸 보니 이번에는 잘 되겠네”라고 말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최종 경선에서 승리해서 공천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런데 공천이 확정되자마자 구설수에 휘말렸습니다. 급기야 과거 발언들이 문제되어 공천이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그 발언들이 전체 선거판에 크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읍참마속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당사자에게는 요 며칠이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최악의 시간이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모르긴 해도 평생의 한으로 남을 일일 것 같습니다(저도 직장에서 그 비슷한 일을 한 번 겪어서 동병상련이 되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보며 주역 세 번째 장 수뢰둔(水雷屯)의 괘사(卦辭)를 떠올려 봅니다. 육이(六二)의 효사(爻辭) “말은 탔으나 왔다 갔다 한다”라는 대목이 그것입니다.

“육이는 어렵게 왔다 갔다 하며 말을 타고 맴도니, 도적이 아니면 혼인하리라. 여자가 곧아서 시집가지 아니하다가, 십 년만에야 시집가도다”라고 설명이 되어 있고 이어서 주해에 “때가 바야흐로 어렵고 힘들어 바른 도가 아직 통하지 아니하니, 멀리 건너가서 행함은 나아가기가 어려우므로 ‘말은 탔으나 왔다 갔다 한다’고 하였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왕필, 『주역왕필주』, 임채우 옮김, 도서출판 길, 1999(2쇄), 54쪽)

이 부분의 맥락 상 중심이 되는 교훈은 ‘바른 도가 아직 통하지 아니하니’ 멀리 나아가지 말고 말을 타도 그저 집 근처를 왔다 갔다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효사 설명에 나오는 “여자가 곧아서 시집가지 아니하다가, 십 년만에야 시집가도다”를 곧이곧대로 새기지 않고 돌려서(조건절 중심으로) 새기는 게 재미있습니다. 여자가 혼기를 놓쳐 ‘도적만 아니면’ 시집을 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경거망동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라는 가르침으로 읽습니다. 작금의 공천 취소 사태를 이 부분의 주역 주석으로 설명해 본다면, 공천을 주는 당의 입장에서는 후보자 과거 이력에 ‘도적에게 시집간’ 일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고 공천을 취소당한 이의 입장에서는 ‘어렵게 왔다 갔다 하며 말을 타고 맴돌다가’ 모처럼 멀리 한 번 나갔는데 ‘바른 도가 아직 통하지 아니한 때’를 만나 공연히 패가망신한 결과가 된 셈입니다.

얼마 전에 지하철 안에서 들었던 독설 한 마디가 생각납니다. “못나게 생긴 것들이 서방 하나씩은 꼭 꿰차고 방구석 차지를 하고 있다”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 돌아다 봤습니다. 기품 있게 차려입은 중년 여성이 옆자리의 친구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무슨 심사에서 그런 독설이 나왔는지, 혹시 아직 시집 못(안) 간 과년한 딸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며느리 욕을 하는 것인지 도통 모를 일이었습니다. 반발심도 들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돈 잘 버는 서방 하나 꿰차고 방구석 차지를 할 수 있을 만큼 능력 있는 이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 그런 반어(反語)도 아니라면 “깜냥도 안 되는 것들이 처세에는 밝아서 분수에 안 맞는 벼슬자리 하나씩은 꼭 꿰차고 다닌다”로 새겨들어야 할 말씀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만.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