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운하, 바다길과 땅길을 잇다’ 표지.
△포항 운하, 바다길과 땅길을 잇다(조영헌, 도서출판 나루,17,000원)

“수에즈 운하의 종점은 어디인가?”

포항 운하에 대한 이 책의 질문은 이렇게 수에즈 운하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에 대한 답변은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의 저자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 여사에게 들어본다. 그리고 다시 “수에즈 운하의 종점이 홍콩이라면, 중국 대운하의 종점은 어디인가?”로 질문이 바뀐다.

물론 마지막 질문은 “포항 운하의 종점은 어디인가?”로 마무리된다.

중국 대운하 연구의 독보적 연구자인 저자는 포항 운하를 중국의 대운하와 비교하며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중국의 대운하에 비교한다면 한국의 포항 운하는 물리적 길이와 역사 모두 매우 짧다. 규모가 작고 역사가 짧으면 연구의 가치가 없을까? 연구의 내용이 적을 수는 있어도 가치가 없다고 단언하기는 곤란하다. 세상에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포항 운하에 대한 책을 포항 운하에 대한 이야기로만 채우는 것이 쉽지 않음을 곧 깨달았다. 이에 이 책은 기본적으로 21세기에 건설된 포항 운하의 문명사적 의미를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주요 운하의 역사와 비교하며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부디 이 책을 통해 포항 운하 그 자체보다 운하가 인류 문명사에 끼친 영향과 운하의 본질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를 소망한다.”

포항 운하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운하일지 모른다. 총길이가 1.3킬로미터에 불과하다. 2014년 1월 8일에 개통된 포항 운하는 포항의 대표적인 항구인 동빈내항과 형산강 하구를 연결하는 물길이다.

길이는 1.3킬로미터에 불과한 짧은 운하이지만, 오랫동안 끊어졌던 강과 바다 사이의 물길을 복원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적지 않다. 본래 동빈내항은 신라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물류의 중심지로 포항이 발생하고 발전할 수 있는 모태 역할을 했던 내항(內港)이었는데, 포항 운하의 개통을 통해 동빈내항과 경북의 가장 큰 하천인 형산강의 물줄기가 연결되었다. 즉 동빈내항에서 뻗어나가는 ‘바닷길’과 형산강 물줄기로 연결된 내륙의 ‘땅길’이 포항 운하를 통해 ‘이어진’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포항 운하의 의미는 ‘연결’을 통한 ‘공간적 확장’이다.

“포항 운하에서 중요한 것은 운하의 길이나 역사가 아니다. 오히려 운하의 연결해주는 형산강과 동빈내항의 상징적인 의미에 있다. 형산강을 통해 광활한 내륙의 문화가 연결되고, 동빈내항을 통해 바다의 수많은 해상 자원이 연결된다. 즉 포항 운하는 바닷길과 땅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이자 결절점(node)이 된 것이고, 이를 통해 포항 역시 해양 문명과 대륙 문명이 교차하는 항구도시로서의 의미가 분명해질 수 있다. 포항 운하 역시 ‘분리된 것을 연결하여 인류를 통합하는 문명의 작품’이라는 멕컬러프의 운하 개념과 공명하고 있었다. 이 책이 강조하려는 운하의 핵심 요체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에 이 책의 제목이자 포항 운하의 컵셉이 정해졌다.

“해로와 육로를 연결하는 인공 수로”

이에 책의 제목을 ‘포항 운하, 바닷길과 땅길을 잇다’로 잡았다.

요컨대 이 책은 포항 운하라는 물길을 뚫음으로써, 포항은 바닷길과 땅길(육지길)이 연결되는 항구도시이자 해양과 대륙이 만나는 문명의 교차로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조영헌 고려대 교수
저자는 여러 차례의 포항 운하 답사 중에 운하 연변에 배치된 조형물 <정지된 말>을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운하와 말의 관계를 떠올리며,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남선북마”(南船北馬)라는 속담을 인용한다. 남쪽 지방에서는 배를 타고 북쪽에서는 말을 탄다는 뜻이다.

‘정지된 말’을 통해 떠오르는 저자의 생각은 ‘연결’의 배후에 있는 ‘멈춤’이었다.

“배에서 내려 말로 갈아타든, 말에서 내려 배로 갈아타든, 이러한 하차와 승선 단계에는 반드시 ‘멈춤’이라는 경험이 동반하게 된다. 운하와 물길의 특성은 연결과 흐름이지만, 그 연결과 흐름이 잠시 멈추어야 하는 지점이 필요하다. 길의 종류가 바뀌거나, 물의 고도 차이가 발생한 곳이다. 그곳에서는 반드시 쉼과 갈아탐이 발생한다. 이러한 결절점마다 역과 항구가 생기는 것이고, 역과 항구 앞에는 자연스럽게 시장과 숙박업 등 각종 서비스업이 성업(盛業)을 하게 된다. 상업과 교류와 문화의 중심도시는 바로 그러한 지점에서 발전했다. 역사는 늘 그러했다. 중국 대운하를 인프라로 둔 주요 도시는 모두 유통의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 결절점마다 발생했다.”

그렇다면 포항과 포항 운하는 어떠한가?

전통적으로 포항은 해양 방어를 위해 기지가 설치된 곳, 포항창진의 설치 이후로는 함경도와 강원도를 향해 미곡을 싣고 출항하는 선박이 기항을 기다리던 곳, 정어리와 청어를 가득 싣고 온 어선이 동빈내항에 잡은 고기를 내려놓는 곳, 내륙에서 형산강을 따라 온 상인들이 물건을 하역하는 곳, 내륙과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곳, 그리고 지금은 포스코에 원자재를 운송하거나 포스코에서 생산한 철강을 전국과 세계 각지로 운송하기 위한 선박과 트럭이 잠시 멈추고 숨고르기를 하는 곳이다. 포항은 이러한 물길과 땅길을 연결하는 도시이고, 포항 운하는 바로 그 지점, 즉 형산강과 동해, 그리고 포스코까지 연결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남선북마”를 패러디하여 두 용어를 제안한다.

첫 용어는 “동해서육, 사주등육(東海西陸 舍舟登陸)”이다. ‘동쪽으로는 바다이고 서쪽으로는 육지이니,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서다’는 뜻이다. 해양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배를 타고 포항에 도달하는 이들을 환영하며 포항을 통해 대한민국의 각지로 연결되라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서육동해, 사차등선(西陸東海 舍車登船)”이다. ‘서쪽으로는 육지이고 동쪽으로는 바다이니, 차에서 내려 배에 올라타다’는 뜻이다. 이제 한국인의 활동무대로 한반도는 너무 좁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게다가 한반도는 분단 상황이 70년이 넘도록 진행되어 대한민국은 북한으로 인해 유라시아 대륙과 단절된 ‘섬’처럼 존재한다. 한국인의 활동무대를 바다 건너 해외로 눈을 돌린 지도 오래 되었건만, 여전히 마인드는 대륙적인 것으로 갇혀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차에서 내려 배에 올라타고 나갈 수 있는 출항지(出航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포항은 그런 입지적 장점을 모두 지니고 있다. 포항 운하야말로 형산강과 동빈내항을 연결하고 있기에, 내륙으로 연결되는 땅길과 바다로 연결되는 물길을 연결하고 갈아타는 메시지를 담아내기에 최적의 공간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운하의 힘은 ‘연결’에 있음을 강조한다.

“영국은 164킬로미터 길이의 수에즈 운하 하나를 잘 통제함으로써 거의 1만 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홍콩을 종점으로 삼을 수 있었다. 미국 역시 82킬로미터의 파나마 운하를 잘 관리함으로써 세계 주요 항구와 연결되었다. 이처럼 운하의 힘은 ‘연결’을 통한 지리적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공간 혁명’에 있었다. 포항 운하 역시 그러하다.”

과연 포항 운하가 해양 문명과 대륙 문명의 교차로가 되어 한반도발 ‘연결 혁명’과 ‘공간 혁명’의 촉매제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운하로 크루즈 유람을 하고 산책하는 공간에 만족할 것인가?

이에 대한 거대한 저항과 돌파 가능성을 엿보려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첫 번째 안내서가 될 것이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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