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입체북
전 세계 독자들에게 전하는 보르헤스의 마지막 신간 ‘탱고’가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보르헤스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 만에 출간된 그의 유고 강연집으로 37년 동안이나 망각 속에 묻혀 있던 보르헤스의 강연 자료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1965년 부에노스아이레스 82번지에서 10월간 매주 월요일, 4회에 걸쳐 ‘탱고’에 대한 강연이 열렸다. 이때 녹취된 강연 테이프는 강연이 끝나고 망각 속에 묻힌다. 그리고 2002년, 이 귀중한 자료가 우연히 베르나르도 아차가라는 소설가에 의해 발견된다. 보르헤스의 아내였던 마리아 코다마를 통해 이 테이프의 목소리가 정말 보르헤스가 맞는지, 또 그런 강연이 있었는지를 확인한 후 ‘탱고’는 2016년 강연집으로 출간된다.

이 책은 20세기 세계 문학을 대표하는 지성, 보르헤스의 몰랐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낯설면서도 친근한 책이다. 이 책 속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농담을 걸고, 좋아하는 시를 낭송하거나, 때때로 탱고를 흥얼거리는 다소 짓궂고 장난기 있는 보르헤스를 만날 수 있다.

진짜 탱고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를 따라 1880년대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야 한다. 대부분의 구조가 비슷한 단층집, 여전히 계급이 남아 있고 다 함께 가난했던 시절, 이 도시의 매음굴에서 탱고는 시작된다. 보르헤스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르헨티나의 싸움꾼, 불량배, 건달, 즉 콤파드레의 시절이다. 우리는 에바리스토 카리에고의, 델 마소의 시 속에서도 살아 있는 탱고를 만날 수 있다.

보르헤스에 의하면 파렴치하고 수치스러운 뿌리를 지닌 탱고는 ‘부잣집 도련님들’ 즉 젊은 불량배들에 의해 파리로 옮겨 갔고 그곳에서 품격이 부여된다. 그러고 나서야 탱고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전역에 유행하게 된다.

보르헤스는 이 책에서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탱고의 어원을, 유행의 변화를,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레오폴도 안토니오 루고네스 등 당대 유명 작가들의 작품 속에 숨은 탱고의 흔적을 특유의 해박한 지식과 애정으로 탐색해 나간다. 결국 보르헤스가 ‘탱고’라 부르는 그것은 “아직도 밀롱가의 용감한 정신을 보존하고 있는” 20세기 초의 유산이며 아르헨티나의 영혼을 담은 그릇이다.

누군가의 부탁 때문인지, 자발적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사람이 1965년 10월 4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보르헤스의 강연을 녹음한다. 그가 없었다면 이 강연은 “소수의 사람만 누린 호사”(「작품 해설」)로 남았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단연코 다정하고 인간적인 보르헤스다. 그는 강연을 시작하며 청중들에게 이 자리가 강연이 아니라 ‘대담’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건네기도 하고 강연을 마칠 때면 겸손하게 강연을 마무리하고 같이 탱고를 듣자고 권하기도 한다.

보르헤스는 이 책 속에서 지금처럼 팽창하기 전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가난한 동네에서 자랐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듯하다. 그 시대에서 건져 올린 위대한 아르헨티나의 정신은 비록 가진 것은 많지 않았지만 용감하고 실리를 따지지 않던 콤파드레들이 간직하고 있다.

그는 로사리오나 몬테 비데오의 변두리에 사는 콤파드레를 상상해 보자고, 싸구려 집에 사는 그 삶이 얼마나 가난했을지 생각해 보자고 권한다. 그가 들려주는 건달은 “아픔은 내가 책입집니다.”라며 수술을 참아 내는 농장의 어느 일꾼이기도 하며, 오랜 친구이자 적인 두 사람이 감옥에서 나와 만났을 때 “어디에 새겨 주면 좋겠어?”라고 자극하자 “여기.” 하며 상대의 얼굴을 베고는 얼싸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라기보다는 사람을 죽이는 불행이 일어나는, ‘불행에 빠지는’ 사람에 가까운 사람들이었으며 용기를 하나의 종파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보르헤스는 20세기 초의 이 사나운 시절을 회고하며 오히려 오늘날이 얼마나 난폭하고 흉포한 시기인지를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한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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