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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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山川)은 지뢰밭인가
봄이 밟고 간 땅마다 온통
지뢰의 폭발로 수라장이다.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푸르고 붉은
꽃과 풀과 나무의 여린 새싹들,
전선엔 하얀 연기 피어오르고
아지랑이 손짓을 신호로
은폐 중인 다람쥐, 너구리, 고슴도치, 꽃뱀…
일제히 참호를 뛰쳐나온다.
한 치의 땅, 한 뼘의 하늘을 점령하기 위한
격돌,
그 무참한 생존을 위하여

봄은 잠깐의 휴전을 파기하고 다시
전쟁의 포문을 연다.

[감상] 봄을 전쟁에 빗댄 시다. 전쟁(戰爭)의 ‘전(戰)’은 새총 모양의 고대 사냥 도구와 무기인 창이 결합한 글자다. 고대에 사용했던 무기를 나열해 서로 다툰다는 뜻을 표현했다. ‘쟁(爭)’은 갑골문에 소의 뿔을 놓고 서로 잡아당기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꽃과 풀과 나무의 여린 새싹들”과 “다람쥐, 너구리, 고슴도치, 꽃뱀”들이 “한 치의 땅”과 “한 뼘의 하늘을 점령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뛰쳐나와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 계절이 ‘봄’이다. 봄이 가진 기존의 이미지를 폭발시켜 봄을 다시 보게 만든다. 삶은 고해(苦海)고 봄은 전쟁(戰爭)인가. 집착 때문에 삶이 고해라면, 봄이 전쟁인 것은 살고자 하는 본능 때문일까. 봄이다, 살아야겠다. 봄이다, 싸워야겠다. 봄날, 출정(出征)을 앞둔 사람들이 화사한 전투복을 꺼낸다.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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