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희  소설가
권소희 소설가

미국에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축복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쟁 도발의 낌새가 보이거나 사회가 불안해지면 태평양 너머에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 가졌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타민족들이 목숨을 걸고 미국 국경을 넘는 걸 보면 미국에 사는 건 죽지 않고 천국을 경험하는 일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특히 교육을 생각한다면 미국이 단연 으뜸이다. 미국에서 갖는 학위는 ‘성공’이라는 아이콘을 충족시켜준다. 그렇다고 김 여사의 아메리칸드림을 누구나 이루는 것도 아니다. 남편 없이 남매를 키웠던 김 여사에게 재봉틀은 삶이자 생존이었다. 미국에서 줄곧 봉제공장만 다녔던 그녀는 볼멘 음성에 툭툭 내뱉는 말투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런 그녀가 샤넬 로고가 붙은 안경을 쓰고 나타났다. 김 여사의 딸이 LA에 있는 명문 USC대학을 졸업했단다. 게다가 치과의사가 된 딸은 사위까지 치과의사다. 자식이 잘 풀리니 촌티가 풀풀 풍기는 김 여사의 꼬인 말투에 힘이 들어가도 아무도 딴지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미국 부모들의 과열된 사랑이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별반 다르지 않다. 2019년에 ‘릭 싱어의 스캔들’이 터졌다. 57명의 부유층의 자제를 대학교의 정문이 아닌 ‘옆문’으로 입학시켰던 릭 싱어의 스캔들을 통해 미국에서도 명문대 학위가 스펙을 쌓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을 엿보게 되었다. 그 스캔들은 기부금을 받는 미국 대학의 관례가 만들어낸 기형적 비리였다. 릭 싱어의 입시 비리는 명문대에 입학시키려던 상위 1%에 해당하는 미국 부유층 가정의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미국은 대학 입학에 있어 여러 종류의 경우의 수가 있다. 경제력으로 넉넉지 않으면 일단 지역마다 있는 커뮤니티 칼리지로 입학해서 교양과목을 먼저 수강하고 난 후에 대학으로 편입하면 된다.

대학에 간 자녀들의 탈선으로 속을 끓이는 경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 여사는 미국에서 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남편은 UCLA 대학교수라고 들었다. 한국에서 성장한 성인이 미국 내에서 전문적인 직업을 갖는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 여사는 고속도로를 운전하지 못한다. LA 한인타운에서 모임이 있으면 이 여사는 거의 모임이 끝날 때쯤 도착했다. 고속도로를 타지 못해서 남들은 1시간 걸려서 올 거리를 2시간 넘게 시내 도로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시 시내를 뱅뱅 돌며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 여사에게는 남모를 속앓이가 있었다. 대학을 다니던 아들이 마약을 한 모양이다. 마약중독자를 위한 프로그램에도 참가했다는 데 비용만 천만 원 이상 든다고 한다. 아들의 마약 복용에 대한 충격으로 고속도로를 진입하지 못한다는 누군가의 귀띔에 자녀의 탈선으로 인한 충격이 얼마나 큰지 짐작했다. 자녀의 몰락은 곧 부모의 몰락을 의미하는 모양이다.

미국 대학교는 입학한다고 다 졸업하는 건 아니다. 4년 만에 졸업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강의 인원은 제한되어있는데 수강 신청을 놓치면 다음 학기로 미뤄져야 하고 그만큼 졸업은 멀어지게 된다. 멀쩡했던 자녀가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이 발병하는 시기도 대학생 때 많이 일어난다. 통계에 따르면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한인 대학생들이 40%가 중도에 포기한다고 한다.

미국 대학 문은 활짝 열려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인생을 빚으로 시작하게 만든다. 백인 여학생들이 한인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이 괜히 떠도는 게 아니다. 한인들은 부모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학자금을 조달해주어서 학자금 대출 빚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둘 중 한 그룹에 속해야 했다. 저소득층에 속하거나 아주 부유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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