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임 중 <포항중앙교회 목사>

어렸을 때 둘째형과 함께 시냇가에서 고기를 잡다가 모래밭에 앉아서 집을 짓고 즐기던 생각이 납니다.

형은 형 방식대로, 나는 내 방식대로 모래집을 지어 가다가 형이 실수하여 내가 잘 지어 놓은 집을 발로 뭉개버렸고 나는 앙앙거리면서 울었었습니다.

미안해하는 형이 “내가 다시 지어줄께”라고 하면서 나를 달래 보지만 막무가내로 울어대는 나에게 형이 화가 나서 외친 말이 있습니다.

“부서졌으면 새로 지으면 될 것 아니냐. 새로 짓는 집은 더 좋게 지을 수 있는 거야” 그러면서 형은 울고 있는 나를 그냥 두고 형이 지은 모래집을 발로 휘휘 뭉개 버리고 먼저 일어서 가 버렸습니다.

뒤따라가면서 “형아! 내가 잘못했어”라고 어리광을 부리는 내 머리를 툭 치면서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하면서 씩 웃어 주던 형의 얼굴과 그 때 하신 말이 생각납니다.

모리스 프랭크(Morris Frank)는 미국 권투계 유망주였습니다.

그가 시합에서 눈을 크게 다쳐서 실명(失明)하게 됩니다.

의사 두 명이 모두 그에게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절망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프랭크의 인생에 있어서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프랭크에게 있어서 인생의 최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와 같은 처지의 맹인들을 위하여 “the seeing eye” (보는 눈) 이란 별명을 가진 안내견(案內犬)을 훈련시켜 맹인들의 길잡이 친구로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프랭크는 눈을 잃었지만 거기서 자기의 삶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눈을 열어 보다 나은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창출한 것이었습니다.

“신은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는 옛 히브리 격언이 있습니다.

흙이 부서져서 곡식을 냅니다. 곡식이 부서져 빵이 됩니다.

빵이 부서져서 우리 몸의 에너지가 됩니다.

포도주도 향수도 잘 부서져서 만들어집니다.

사람도 원숙 한 인격을 갖추려면 충분히 부서지는 과정을 밟아야 함을 깨닫게 해 줍니다.

예수님은 날마다 부서지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 지도자들에게 모진 말을 들으면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호산나를 외치던 무리들이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슬픈 현장의 중앙에서,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살과 뼈를 부서뜨리면서 날마다 부서지는 날들을 사시면서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요함이 부서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서 해방되었고(고후8:9), 주님의 육체가 부서지면서 많은 병든 자들이 건강함을 입었고(벧전2:24), 그의 축복이 부서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저주에서 해방되었고(갈3:13), 그의 생명이 부서지면서 많은 사람이 살게 되었습니다.(막10:45, 갈2:20)

이와 같은 진리를 알게 된 바울이 자기를 부서뜨리면서 이방 선교의 장을 열었고, 인류 역사에 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점이 자기를 부서뜨리면서 만들어 낸 결과가 모든 이들의 평화와 축복이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의 자리에 소중한 것이라 생각되는 것들이 부서질 때 우리는 절망할 것이 아니라 부서지면 또 다른 좋은 것을 지을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열고 새로 짓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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