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 르네상스, 계단 변천사 소개
건축 조형에 깃든 의미 주관적 해석

계단, 문명을 오르다임석재/휴머니스트

역사학자가 아니라 건축학자인 이화여대 건축학과 임석재 교수가 건축학적, 미학적 관점에서 고대부터 20세기까지 계단이 인류의 문명과 함께 어떻게 변해 왔으며 어떤 의미를 품고 현재에 이르렀는지 탐구해 '계단, 문명을 오르다'(휴머니스트 펴냄)라는 책으로 냈다.

"세상은 온통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들의 일과는 계단으로 시작해서 계단으로 끝난다…. 계단에 담긴 뜻은 또 어떤가. 개인의 심리작용에서 문명을 상징하는 내용까지 계단 속에 담긴 뜻은 무궁무진하다"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언제부턴가 지하철역의 가파른 계단 앞에 서면 한숨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계단이 갖는 본래의 의미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이 책의 첫 번째 전제는 계단이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본능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낮은 곳과 높은 곳을 잇는 도구가 필요했고 인체의 무릎 동작에 알맞은 형태가 계단이었다는 것이다. 일단 필요에 따라 계단이 만들어지자 인간은 그 안에 '욕망'을 담기 시작했다. 건축학자들은 대개 건축은 말을 한다고 믿는다. 그저 쓸모에 따라 짓는 게 아니라 특정한 목적에 따라 설계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책에 깔린 두 번째 전제다.

계단은 본질적으로 높은 곳으로 향하는 '수직성'에 기반을 둔다. 인간은 언제나 경쟁심을 품고, 더 높은 곳을 차지하는 자가 승자로 인정받았다. 즉, 높은 곳은 정치적 힘을 상징했다. 고대인들은 가장 높은 곳에는 가장 강한 존재인 신이 산다고 믿었다. 제를 올리는 곳은 하늘에 가장 가까워야 했다. 인간들은 산을 오르는 계단을 짓고 탑을 쌓으면서 일직선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가파른 모양을 강조했다.

계단은 그리스-로마를 거치며 점점 실용적 기능에 충실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계단이 실내로 들어온 중세에도 성채의 외부 방어를 쉽게 하고 은밀함이 보장되는 실용적 이유로 나선형 계단이 주를 이뤘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탈권위주의 현상은 계단에도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계몽주의가 일어나면서 계단은 절대 권력의 공간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탈바꿈해 도심 공원 속 노천 계단이 등장했다. 엘리베이터로 계단이 실용적 의미를 더욱 잃어버린 현대에 계단은 자유분방하게 인간의 예술과 이념, 취향을 담고 있다.

저자는 긴 세월에 걸친 계단의 변천사를 소개하면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부터 이란 페르세폴리스, 베니스의 팔라초, 독일 아우구스투스부르크 왕궁,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 계단, 브뤼셀 대법원 계단까지 서양의 광대한 유적을 탐방하듯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서양 문명사를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계단과 건축 조형에 깃든 의미를 파헤치거나 개개의 건축물로서 계단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비평을 섞어 넣은 덕에 글이 딱딱하지 않다.

시대별로 나눈 장(章)마다 당시의 계단을 현대로 끌어와 응용한 사례를 들어 과거와 현대를 잇는 의미와 현장감을 높였다. 1권 1만6천, 2권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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