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家를 찾아서 - 18. 군위군 부계면 한밤마을 부림홍씨 종택

부림홍씨 종택 전경

부림홍씨(缶林洪氏)종택이 자리잡은 한밤마을은 대율리(大栗里)라 불리기도 한다.

경북 군위 부계면에 자리한 전통마을로 950년께 남양 홍씨에서 갈려 나온 부림 홍씨의 시조 홍란이란 선비가 입향하면서 촌락을 형성했다. 그 무렵 의홍 예씨, 신천 강씨 등도 마을로 들어왔으나 모두 떠나고 현재는 여양 진씨, 전주 이씨, 예천 임씨, 영천 최씨, 고성 이씨 등이 부림 홍씨 일족과 어울려 살고 있다.

하지만 홍씨의 비율이 여전히 높은 편이어서 이곳이 부림홍씨 본향이며 동성 집성촌이 누대에 걸쳐 지금까지 이어왔음을 보여준다.

한밤마을 초입 돌담길

한밤마을은 본래 심야(深夜) 또는 대야(大夜)라고 불리던 곳이다. 그러나 1390년경 홍씨 14대손 홍로가 대율(大栗)로 고쳐 불렀다. 한밤은 그 대율의 이두 표현법.

이 마을은 돌담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힐 정도로 운치가 있다. 송림은 지난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10대 마을숲' 중 하나로 지정했다. 때문에 봄·가을이면 벚꽃과 단풍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특히 송림은 임진왜란 때 홍천뢰 장군의 훈련장으로 사용된 곳이다. 숲 속에는 장군의 기념비와 진동단, 효자비각 등이 세워져 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 동안 잡목제거와 함께 연못과 장군 기념비, 개천 등을 재정비해 완벽한 마을의 쉼터로 다시 태어났다.

남천고택

오늘의 부림홍씨을 있게 한 부림홍씨의 혈통은 유구한 세월동안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타성씨(他姓氏)들과 마찬가지로 부림홍씨 역시 조상에 대한 유래와 근원을 다 밝힐수는 없다.

부림 홍씨 종택은 그리 역사가 길지 못 하다. 제2석굴암 부근에 종택이 있었는데, 화재로 소실돼 한밤마을로 옮겨왔다. 현재 10대째가 살고 있다. 홍씨의 원조인 홍천하(학사공)는 당나라초에 초나라 요양에서 살다 문화사절로 고구려에 들어왔다는 기록이 목은 (李牧隱)선생의 당성인이란 책 서문에 적혀있다.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모든 洪氏의 시조는 중국 당나라에서 고구려로 이주한 학사공 휘 란의 후손이란 것이 정설이라고 한다. 부림홍씨 시조 휘 란(鸞) 역시 고려 중엽 재상을 지냈음과 남양지방에서 缶林으로 옮겨왔다는 사실외에는 더 구체적인 행적은 전해오지 않는다.

한밤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총연장 4㎞에 달하는 명물 돌담길이 있다. 1930년 7월 폭우때 팔공산이 토해낸 돌들이 만들어낸 곳으로 자동차 한 대가 충분히 지날 만큼 널찍하다. 이 돌담길이 마을 중앙의 대청으로 이어진다. 이 대청은 조선 전기에 지어진 것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로 지정돼 있다. 대청에 대한 구전에 의하면 이 마을은 전 지역이 통일신라시대 사찰지였고 대청은 사찰의 종이 걸린 종루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인조 10년(1632년) 중창됐다는 기록이 있다. 다시 효종과 숙종 때 고친 적이 있고, 1992년 들어 완전 해체·복원했다. 대청은 본래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동네의 사랑방으로 내놓았다.

현재 부림홍씨 사랑채인 '경절당'은 고려시대 문하사인(文下舍人)지낸 홍로의 불천위 묘우로 1988년 건립했다. 이외에도 1786년 (정조 10년)설치된 지방교육기관 '양산서원', 1948년 홍로의 절의를 추모하기 위해 양산폭포 반석위에 걸립한 '척서정', 홍여정의 유덕을 기리면서 제사를 지내는 곳 '경의재'가 있다. 정절당은 큰 제사를 앞둔 칠석에 70세이상 문중 어르신들이 모여 문중 대소사를 논의하는 곳이다.

남천고택은 대청 옆에 있다. 상매댁이라고도 불리며 100년 이상 된 한옥이 20채가 넘는 한밤마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집이다. 조선 후기 1836년 지어진 것으로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57호로 지정돼 있다. 중문채와 아래채도 있었으나 광복 후 철거됐고, 대문채도 살짝 옮겨졌다.지금은 사랑채와 안채, 사당이 남아 있다. 현재 이 집은 부림 홍씨 29대 손인 홍석규 씨가 지키고 있다.

부림홍씨 종택은 고려에 절의를 지킨 홍로(1366~1392)를 불천위로 모신다. "대저 어려서 글을 배우는 것은 커서 실행함에 있다"는 홍로의 아버지가 한 말, 이 말을 실천하며 아버지를 대신해 종손역할을 하는 28대 종손 홍구헌씨(1960년생)는 대구에서 회사를 다닌다. 하지만 홍구헌씨는 "종손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자신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문중을 현재보다 격상시켜 이끌고 싶은 포부를 갖고있을만큼 종손으로 잘 만들어진 인물이다. 때문에 종가를 지키며 전통을 계승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또 종가문화의 근간인 봉재사·접빈객은 당연하다고 한다. 부린홍씨 종택 불천위 제사와 묘사는 문중에서 제사를 주관한다. 종손은 명절 제사와 기제사를 주관하고 있다. 조상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누대에 걸쳐 내려온 종가가 명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이같은 마음가짐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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