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장이 주민과 목욕탕 알몸대화파출소장은 택배 맡아뒀다 전달격식없고 진솔한 대민업무 귀감

서상은 호미수회장

우리지역에 새로운 문화 바람이 불고 있어 화제다. 면장이 목욕탕에서 주민들과 만나 업무격식을 떠나서 편안한 대화를 나눔으로 하여 진실한 대민 사정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떤 민원이라도 면장이라는 책상 앞에 앉아서 문서로 보고를 받고 듣는 것과 업무처를 떠난 자리에서 듣는 것은 분명 차이가 크다. 우리가 옷 한 벌을 입고서도 무슨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서 행동과 마음 가짐 자세가 달라지는 건데 면장실 책상 앞에 앉았을 때와 밖에 나와 길거리에서의 자세가 같을 수 없다. 그만큼 서민적인 정겨움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면장 책상 앞에서는 하기 어려운 말도 어느 동네 잔치마당에 앉아 술잔 나누면서 허심탄회한 자리라면 쉽게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70년대 내가 어느 지역 군수로 부임했을 때 있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군청 관사 가까운 목욕탕을 갔더니 주인이 반가워서 오만 찬사를 다 늘어놓았다. 하이 군수님이 우리 목욕탕을 이용해주시니 이런 영광이 어딨습니까. 하더니, 한 달 후엔 그 태도가 싹 달라졌다. 이유를 알고 보니 나 때문에 군청직원들이 전부 다른 목욕탕을 이용한다는 말이었다. 군민 잘 살게 하자고 온 군수가 목욕탕 한 집을 망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사업에 방해가 된다는 데야 어쩔 수 없이 그곳 목욕탕을 갈 수 없었다.

집에 와 가만히 생각해봐도 조금은 야릇하고 우습기도 했다. 군수가 목욕탕에서 직원들을 본다고 이상히 볼 게 뭐 있겠노. 그렇다고 저희들이 군수 알몸 보는 것이 민망할 것도 없는 일, 하지만 그 시절엔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에 그 다음 부터는 내 얼굴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멀찍한 도시로 목욕을 다녔다. 요즘 군수들은 어떤 목욕탕을 다니는지 궁금하다.

또한 우리지역 파출소 업무가 달라져서 그것도 주민들간에 화제다. 지역이 농어촌이라 낮에는 모두 생업에 종사하는 관계로 대문 방문 모두 잠겨져있고 불러도 대답 없는 집들이 많아 먼 곳에서 보내온 택배물이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을 대민봉사하는 파출소에서 임시로 받아 두었다가 주민들의 귀가시간에 파출소 직원이 배송해 주고 있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는 말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제일 무서운 것이 순사였고 가장 점잖은 어른이 면장이었다. 면장은 일을 시키고 임금을 주지 않아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백성들이 많았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공짜일 한 것을 빗대어 '면장일 했다'라는 말이 생겼다.

순사는 어땠나. 울다가도 순사 온다 하면, 순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 아이들도 일단은 울음을 그쳤다. 실로 무서웠다. 산간 지역 호랑이가 순사였다. 어느 동네를 지나가다 살찐 암탉이 보이면 구장을 불러 저 닭이 좋게 보인다고 하면 돈 한 푼 안 받고 잡아줬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더 그랬다. 이런 권위와 인습이 시대 따라 점점 달라져서 오늘날엔 가정으로 보내온 택배 물까지 받아뒀다가 배달해주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변하고 변한 우리의 이웃이 되었는가?

목욕탕 면장과 택배 파출소장이 주민들 속에서 함께 숨 쉬고 사는 세상이 왔으니 이름 하여 우리 호미곶에 평화로운 태평성대가 이뤄졌다고 아니 할 수 있겠는가? 진실한 업무는 그대들에게 복 받음으로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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