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예천 삼강주막

삼강주막.

△삼강주막

낙동강, 내성천, 금천 등 삼강 (三江)이 모여 하나의 큰 강을 이뤄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곳, 옛 과거보러가는 선비들의 쉼터이자 막걸리 한 사발에 보부상의 애환과 삶을 엿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예천의 삼강주막이다.

이곳 삼강주막은 옛 선조들이 등용을 위해 과거보러 가는 길목이자 뱃사공들과 짐꾼 보부상들의 쉼터이며 각종 물류창고로서 활용된 장소로서 양반, 보부상, 농민들의 계층을 떠나 막걸리 한 사발에 피로를 풀고 덕담을 나누던 주막이였다.

회룡포.

195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와 서울을 잇는 단거리 뱃길로,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소금배와 집산된 농산물이 모이는 곳으로 봇짐장수, 방물장수들로 주막은 늘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도로가 뚫리고 낙동강 물줄기 위로 다리가 가로질러 놓이면서 이 곳은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주막과 주모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지만 삼강 주막 유옥연(주모) 할머니는 지난 2005년 90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70년간 주막을 지키며 찾아오는 상인들을 위해 장사를 했었다.

많이 배우지 못한 유 할머니는 글도 숫자도 알지 못해 외상을 줄때마다 본인만 알아볼 수 있게 부엌 한 켠 벽에다 칼금을 그어 놓았다.

한 잔을 외상하면 짧은 금, 한 주전자를 외상하면 긴 금을 세로로 그어 놓았다가 외상값을 죄다 갚으면 옆으로 길게 금을 그어 외상을 지워 지금도 주막 흙벽에 그을음과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다.

유 할머니가 세상을 뜬 후 주막은 한동안 주인을 찾지 못하다가 경북도가 그 문화·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민속자료 134호로 지정한 후 2007년 1억5천만원의 예산으로 옛 모습 그대로 복원시켰다.

허물어지는 슬레이트 지붕 대신 짚단을 얹은 원래 모습에 진흙을 바른 담장, 구들장, 아궁이는 그대로 두고 칼금을 긋어 외상을 표시한 부엌도 원형 그대로 남겨두고 방 2개와 다락, 툇마루에 원두막(정자) 2채가 새롭게 신축돼 새로운 관광지로 명승을 얻고 있다.

현재 삼강주막에는 새 주모 권태순(70) 할머니가 맡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막걸리와 안주거리(배추전, 두부, 묵)를 내놓고 있으며 주막이 복원됐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삼강주막 옆 회회나무엔 전설이 깃들여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300년전 상주군에 있는 한 목수가 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면 사고도 나지 않고 큰 돈을 번다하여 연장을 가지고 이 나무를 베려고 하니 사람들은 마을을 지키는 영험스러운 나무라 하여 베지 못하게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나무그늘이 좋아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백발을 날리는 노인이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서 "만약 이 나무를 해치면 네가 먼저 죽으리라"하므로 꿈에서 깨어나니 하도 생생하여 식은 땀을 흘리며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혼비백산 달아났다고 한다.

△회룡포

태백산 능선의 수많은 산자락에 둘러싸여 유유히 흐르던 내성천이 산을 부둥켜안고 용틀임을 하듯이 휘감아 돌며 빠져나가는 특이한 지형을 형성하는데 이곳이 회룡포이다.

회룡포는 한 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물도리 마을로, 2005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6호 지정, 2009년 국토해양부와 한국하천협회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 최우수상 수상, 대한민국 여행작가가 추천한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 등 화려한 수식어를 자랑하는 만큼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으로 전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애초에는 물이 굽이굽이 돌아간다는 회룡과 인접한 곳으로 기묘하게 이루어진 지형이 의로운 자연환경을 이루었다 하여 의(義)자와 내성천(乃城川)이란 성(城)자를 따서 의성포란 이름을 얻었으나 물돌이동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이웃 마을인 의성군에 가서 회룡포를 찾는 웃지 못할 일이 많아지자, 의성포를 둘러싼 회룡마을과 용포마을의 첫 글자를 따서 회룡포로 부르게 되었다.

회룡포는 나룻배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워 한국전쟁을 피해갈 정도로 한적한 곳이었다. 그래서 나라의 큰 난리가 있을 때마다 인근 백성의 은신처가 됐다. 지금은 마을 대부분이 논밭이지만 원래는 밖에서 보면 안에 무엇을 들었는지 모를 정도 소나무가 무성했다.

회룡포마을의 전체 면적은 8만 평쯤으로 사람이 들어와 산 것은 조선 고종 때 예천의 아랫마을 의성군에 살던 경주 김씨 일가가 소나무를 베고 논밭을 개간하였으며 현재는 9가구 20여명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이 마을과 세상을 이어주는 길은 개포면에서 들어오는 임도와 육지의 모래밭과 마을의 모래밭을 이어놓은 철다리다. 교각을 세우고 공사장에서 쓰는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을 두 줄로 깔아 놓은 다리로 마을 사람들은 구멍이 뽕뽕 나 있다고 해서 '뽕뽕다리'라고 부른다. KBS 인기드라마 '가을동화'의 주인공 준서와 은서가 어린 시절 놀던 곳으로 다리를 건너보는것 또한 신나는 추억거리가 된다.

내성천과 회룡포의 참모습을 한눈에 보려면 장안사가 있는 비룡산 중턱의 회룡대에 올라야 한다.

솔향기 그윽한 장안사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금강산과 경남 양산, 국토 중간인 비룡산에 하나씩 모두 3개의 장안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문인 이규보가 머무르며 '장안사에서'란 절창을 지어낸 유서 깊은 도량이다.

회룡포의 자태를 완벽하게 드러낼 수 있는 절묘한 곳에 있는 회룡대는 산줄기와 물줄기가 어우러진 최고의 물돌이동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으뜸 포인트다. 아마 이런 전망대가 없었다면 회룡포의 아름다움은 아직도 묻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룡산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합쳐지는 삼강이 보이는데 깎아지르는 듯한 이곳에는 삼한시대부터 격전지로 유명한 원산성이 있다. 천혜의 요새로 된 토석혼축으로 된 성 주변에는 많은 고분이 흩어져 있으며 봉수대와 군창지가 남아있다. 백제 시조 온조가 남하할 때 마한 최후의 보루인 이곳 원산성을 점령한 후 백제를 세웠다고도 전해지며 삼국사기에 의하면 상당기간 백제의 요새로서 삼국이 충돌했다고 한다.

그 당시 얼마나 격전지였던지 지금도 피끝이라는 언덕에는 비가 많이 오면 성 아래 마을인 성저마을에 아비규환과 원혼의 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고구려의 온달 장군이 전략 요새인 이성을 점령하려고 남하하다 아차성에서 전사했다고 하나 밝혀지고 있지는 않다.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명승지 회룡포에 대한 자연적·문화적 경관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탐방객들이 체험하며 즐기고 볼 수 있도록 보완하고자 소나무 숲 복원, 마을 안 도로 및 담장 정비, 연지 및 휴식공간 조성, 마을 내 전선 지중화 등을 추진해 아름다운 회룡포를 보존하고자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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