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박사

통일벼 개발을 주도해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는 주곡 자급달성을 이루는데 기여한 정근식(사진) 박사가 지난 15일 오전 7시 향년 82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1958년부터 1991년 까지 농촌진흥청에서 34년간 오직 벼 품종개량에만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획기적으로 쌀 수량이 높은 통일벼 개발에 이어 밀양21호, 밀양23호, 밀양30호 등 다양한 다수성 벼를 육성·보급해 1977년에는 마침내 '민족의 염원'인 쌀자급을 달성하게 한 최대의 공로자로 인정받고 있다.

정 박사는 농촌진흥청 영남작물시험장장, 한국식물조직배양학회(현, 한국식물생명공학회) 회장, 한국작물학회 부회장, 한국육종학회 상임이사,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대의원 등을 역임했으며 우리나라 주곡 자급 달성에 기여한 공으로 1971년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시험연구 공로상', 1977년 녹조근정훈장, 1991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유가족으로는 부인 임일영 씨와 자녀 수선, 옥선, 진태, 명선 씨가 있으며 지난 17일 발인했다.

고인에 대해 경북대 손재근 교수는 "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만 되면 먹을 것이 부족해 굶거나 풀뿌리로 연명하는 사람이 많았다. 1972년부터 채택된 50원짜리 동전 앞면에 새겨진 벼 이삭 그림은 식량해결이 얼마나 큰 국가적 염원이었는지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예"라며 "정 박사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 달성은 훨씬 더 늦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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