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남성의 진정한 본성에 대한 주장은 항상 특정 성에게 적합한 역할만을 강요해왔다. 부드럽고 양보 잘하며, 정서적이고 감정을 중시하는 여성은 아이를 기르고 가사를 담당하는 것에 적합하며, 용기있고 공격적이며, 매사에 의욕이 넘치고 이성적인 사고를 지닌 남성은 밖에서 활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통념과 달리 남녀의 인성차이는 ‘태생적’이고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여자는 ‘여자답게’, 남자는 ‘남자답게’를 강요하는 성역할 고정관념과 이를 내면화하는 성역할 사회화 과정을 통해 학습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여기서 ‘학습- 배운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역할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가변적인 요소라는 것을 배운다면? 아마 그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을 동시에 받아들여 성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아버지가 아이를 맡아 돌본다고 하면 사별이나 이혼 등으로 엄마가 없는 부자가정 얘기겠지 하겠지만 최근 언론에는 이런 통념을 뒤집듯 자발적으로 육아를 선택하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첫아이의 공동육아를 위해 아내의 출산휴가가 끝난 후 곧바로 2개월간의 육아휴직을 신청한 신문사 기자, 태어나자마자 병원신세를 져야했던 둘째 아이로 인해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한 국세청 공무원, 조달청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신청해 화제가 되었던 맞벌이 남편 공무원.
그들은 처음엔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도 있었지만 아빠가 육아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것이 많았다고 입을 모은다.
“아빠와 아이와의 친밀도가 중요함에도 사실 대부분의 아빠와 자녀의 관계는 그렇지 못하잖아요. 아빠가 육아를 담당함으로써 아이와의 유대관계가 강해지고 부부사이의 이해도 높아져 전체 가족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온다고 생각해요.”
“대학졸업 후 바로 취직해서 정신 없이 달려왔어요. 아이들이 자라는데도 아이 장래나 가족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가족과 대화할 시간도 없었어요. 1년간 육아휴직을 하면서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봐요. 1년 투자로 가족의 40∼50년이 풍요로워질 것 같습니다.”
“서른 여덟에 얻은 첫딸아이가 너무 예뻐 집에서 1년간 딸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내가 나보다 더 활동적이고 둘의 월급을 비교해 봐도 내가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얼마 전 ‘모성보호법’이 통과되면서 부부가 형편에 따라 육아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길은 미흡하나마 열린 셈이다. 그러나 제도적인 장치보다 더 바꾸기 어려운 것이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는 사회적 통념과 편견이다. 주위에 ‘기저귀를 가는 남자’, ‘밥짓는 남편’이 많아져 그릇된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 시급하다.
육아라는 귀중한 체험을 통해 나머지 ‘절반의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진정 용기있는(?) 남성들의 인식변화와 동참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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