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냄새 자욱한 지구촌

한국전쟁 직후에 소년기를 보낸 나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말들이 있다. 그 중에서 ‘네가 군대에 갈 때쯤이면 평화가 오겠지’라는 말이 요즈음 자주 되살아나서 혼자 웃어 본다.
그 당시에 집안 아저씨나 이웃의 선배들로부터 전투에 참여한 무용담을 듣기도 하였고 군에서 고생한 이야기를 들을때도 있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군대에 가면 어쩔까’ 하고 미리부터 걱정에 잠겨보기도 하였다.
그럴때마다 할머니께서는 ‘네가 군대에 갈 때 쯤이면 우리나라에 평화가 온다. 설마 그 때 까지도 평화가 안 올까봐. 좋은 날 오기를 기다려 보자’고 하셨다.
평화가 오리라던 날이 많이도 흘러갔다. 손자의 안위를 걱정하던 할머니의 염원에 아랑곳없이, 그 할머니의 증손자까지 군대에 가서 충성(?)을 하였건만 평화의 여신은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나라 안에서는 무슨 게이트니 개혁이니 하여 사사건건 물고 뜯고, 정쟁으로 얼룩진 한 해였다.
모처럼 물꼬가 터질 것 같던 남북화해며, 그 시끄럽던 햇볕의 정체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겨레의 여망에 등 돌려버린 북한의 심술도 야속하고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도 안타깝기만 하다. 평화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나라 밖으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테러와 아프간 전쟁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그것도 부족하여 미국에서는 새해를 전쟁의 해로 선포하였으니 지구촌에 화약 냄새 그칠 날은 요원하기만 하다.
우리를 둘러 싼 국제정세는 더욱 긴박하게 조여오는 것 같다. 군국주의로 재무장한 일본은 자국의 영해를 침범한다는 구실로 북한 함선을 침몰시켰다. 공공연히 세계를 향하여 포문을 연 것이다. WTO 가입을 시작으로 중국의 경제전쟁도 선포되었다. 십삼억을 등에 업고 그들의 장기인 인해전술이 시작 된 것이다.
이러한 때에 조국의 미래를 짊어진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들은 국제적으로 가해지는 멍에 위에 국내에서의 교육전쟁이라는 짐을 안고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기를 펴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의 방책은 진정코 없는 것인가.
일전에 수능시험의 개편안이 또 나왔다. 백년대계가 아닌 삼년대계라고나 해야할까. 이번의 개정안은 얼마나 교육의 본질에 접근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조령모개식, 땜질식인 교육정책이 비인간적이고 비생산적인 역기능을 얼마나 만회할 수 있을지 실로 안타깝다.
승리자가 되기 위하여 인간다운 성장을 포기해야하는 사회. 머리 굵은 사람만 행세하는 각박한 사회. 체중보다 무거운 책가방을 이기지 못해 어깨 쳐진 미래의 주인공. 정쟁의 제물이 된 교육자. 무너진 교실. 사라진 교권. 잃어버린 효제정신. 저소득층의 교육기회 박탈.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교육 피난 떠나는 사람만을 탓할 것인가.
평화를 기다리던 소년이 노년에 접어들었건만 온다던 평화는 언제 오려나. 그래도 우리 어렸을 적에는 공해없는 자연, 가벼운 책가방, 가난 속에서도 피어나는 웃음꽃으로 내일의 희망 속에 살아왔다. 세상이 어지러워 평화의 여신의 발걸음이 더디더라도 밝은 태양과 티 없는 하늘을 우러러 꿈을 엮으며 살아갈 권리만은 청소년들에게 되돌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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