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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2월31일 우리나라 TV역사가 개막됐다. 지금 50대안팎세대는 마치 가설영화보는 것처럼 시골에선 흔치않은 TV수상기앞에서 저녁이면 옹기종기 모여 시청하던 시절이 있었다. 레슬링의 김일선수나 여로의 장욱제는 그 시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들이었다. 70년대 TV에서는 지구인이 달세계에 첫발을 디딘 것도 생생하게 방영되었다.
61년 불과 2만대로 사치품인 TV가 이제 생활용품으로 변모하고 흑백에서 컬러로, 지금은 출연자의 땀구멍까지 볼 수 있는 디지털시대로 접어들었다.
특히 TV는 사회적 가치를 변화시켜 60년대는 도덕을 화목으로 80년대는 자아실현을 여가로 변모시켰다. TV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민감하게 흡수하여 대중에 전파확산 시키는데 기여하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작금의 TV속에는 선정성과 폭력성, 저질화현상이 극대화되고 공영화와 공익성은 배제되어 극도의 상업주의에 휩싸이고 있다. 특히 젊은층의 광란을 부추기거나 용인하여 그것을 자유와 창조라는 이름으로 왜곡 포장시키거나 우리 가치관의 잣대를 뒤흔드는 태도, 연예인을 위한 연예인에 의한 연예인의 TV, 불륜과 사치, 거짓과 꾸밈으로 가득 찬 드라마등 부작용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이런 TV의 많은 장단점을 딛고 어제부터 방송계의 혁명인 디지털 위성시대를 개막했다. 86개의 비디오 채널과 60개 오디오채널 총146개의 위성전파를 발사한다.
채널이 많은 만큼 다양한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최첨단을 달리는 디지털위성방송도 아직은 기대를 충족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다. 먼저 수신기보급이 미미하고 케이블 방송의 의존도가 매우 높다. 과거 케이블 방송이 매우 활성화하리라 기대했지만 지금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계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섣부른 말이지만 위성방송도 전철을 밞지않는다고 볼 수 가 없다. 그러나 보다 진일보한 정보제공자가 등장하면서 화질을 높이고 난시청지역을 없애며 이동중에도 흔들림없는 화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회에 큰 변혁을 가져오는 일이 벌어지는데도 일반 국민이 피부로 별로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청자를 독점하는 지상파방송이 시청자에게 소개를 외면하고 있다.
그것과 달리 그저께부터 인쇄매체인 신문에서 이를 대대적으로 소개하고 특집으로 꾸미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하고도 재미있는 한 장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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