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에 붙여진 지명을 더듬어 보면 그 마다 독특한 전설을 갖고 있다.
우리 마을만 해도 약목골이니 사태골 분토골 절골 등등 그 이름만큼이나 갖가지 사연이 있다.
그 중에 구통재라 불리우는 곳이 있는데, 조그마한 밭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농사철이면 자주 드나드는 곳이다. 그 곳에 가면 유독 산딸기가 많다. 달콤한 열매를 따먹는 재미도 있고 봄철이면 조팝나무가 흐드러져 마음을 흔들어 주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문득 그렇게 부르는 지명의 이유가 궁금하여 알아보니 그 곳에서 바라보면 넓은 들녘과 아홉개의 골짜기가 한눈에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도 내 눈에는 골짜기는커녕 좁다란 하늘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기고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니 그 곳에는 가슴 저린 사연이 들어 있었다.
산의 형태는 대부분 산등성이로 내려오다가 평지와 이어지는데 구통재의 밭은 산줄기의 중간 지역에 분지처럼 움푹하게 파여 밭으로 일구어져 있고, 그 밭을 사이에 두고 다시 산줄기가 이어져 있다. 잎새를 다 떨군 겨울철에 보면 그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밭을 만들려면 완만한 경사지의 표면에 만들 일이지 큰 언덕을 만들어 가며 파내려 가 밭을 만든다는 것은 형태로 보아 분명 자연스럽지 않았다.
어른들 말씀에 의하면, 일제 식민지 시절에 저질러진 일이라고 하였다. 당시 풍수 지리를 중시하던 우리민족의 정서에 패망감을 심어주기 위해 힘있는 자가 저지른 비겁한 횡포였던 것이다.
구통재에 앉아 넓게 펼쳐진 정경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기를까봐 침입자가 사주하여 그것도 주인들의 손으로 훼손하게 한 것이라 한다. 힘은 얼마나 들었겠으며 가슴은 또한 얼마나 아팠을 것인가 풍수설을 믿든 아니 믿든 간에 그것은 상처요 아픔이었건만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서서히 잊혀져 가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구통재는 어김없이 계절을 돌고 돌아 핏방울 같은 산딸기열매를 맺어 지울 수 없는 생채기로 의미 잃은 이름과 함께 마을 뒤편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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