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구(沙丘)·해당화 군락 장관

수십년 세월이 흘렀어도 동해안과 관련된 몇가지 장면은 여전히 내 머리속에 뚜렷이 남아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포항 송도 해수욕장의 짙푸른 파도와 하얀 모래밭과 솔밭의 모습이다. 바다를 모르고 자란 내게 그것은 감동이라기보다 하나의 충격이었다. 게다가 물속에 들어가 발바닥에 밟히는 조개를 수없이 건져 올릴 때의 그 환희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또 하나는 상상속의 구룡포 모습이다. 작고 정다운 바닷가 마을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섬들, 이 섬들을 헤엄쳐 오가면서 노는 소년 소녀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게 그토록 큰 감동을 주었던 송도해수욕장이 사라진 댓가로 오늘의 포항지역은 참으로 많이 번창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경제발전, 경제성장, 경제개발’을 외치고 있으니 오늘의 포항모습이 사람들이 그렇게 염원하는 모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90년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구룡포에도 가봤다. 그때 포항제철과 공단을 지나면서 그 위용을 보고 구룡포에 도착도 하기 전 옛 구룡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었다.
원래 동해안에는 사구(모래언덕)가 잘 발달해 있었다. 이런 곳에는 햇빛이 작열하고, 바람이 센데다가 모래이동이 심하여 보통 내륙식물은 자라지 못한다. 잎이 두껍고, 뿌리가 깊어 이런 모진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식물이라야 자랄 수 있다. 그 옛날 사구가 온전했을 때는 보리사초, 갯완두, 갯메꽃 등이 널리 분포했다고 한다. 이들이 모래이동을 막고 지면을 어느정도 안정시킨 곳에는 해당화군락이 붉은 자태를 뽐내면서 자리잡고 있고, 그 뒤쪽으로 해송이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특히 원산의 명사십리로 불리워진 사구와 해당화군락은 너무도 유명했다고 한다.
이 원산의 명사십리보다 더 큰 규모의 ‘명사이십리’가 영덕군 병곡면 대진리 상대산 기슭의 대진해수욕장에서부터 병곡리의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기까지 길게 발달해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20리에 이르는 긴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해송숲과 사구와 이 사구에 분포한 사구식생은 내륙쪽으로 펼쳐진 넓은 경작지와 어우려져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고래불 명사이십리가 세수증대에 눈이 먼 어리석은 영덕군 당국에 의해 난개발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해송 숲에 관광호텔도 짓고 콘도미니움도 짓고, 승마장, 골프연습장, 서바이블 게임장, 피크닉장, 야영장도 조성해서 많은 사람들이 즐기도록 하겠단다. 이에 대구지방환경청장은 이런 숙박시설을 비롯한 온갖 위락시설을 해서 안된다는 법적, 논리적, 생태적 근거를 대지 못하면 허가해줄 수 밖에 없단다. 자연지역에 인공시설물이 들어서고 자동차와 사람이 들락거리는 그 자체가 훼손행위라는, 너무도 뻔한 사실을 가지고 무슨 그런 말장난을 해야 하는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런 놀고 먹기식 관광지를 조성하는 대신에, 해송숲을 좀더 늘이고, 보라빛 꽃을 자랑하는 순비기나무와 붉은 해당화로 사구를 따라 군락을 조성하고, 그 앞으로는 각종 사구 초본류을 심음으로써 과거의 명사이십리를 복원할 생각을 왜 못하는가. 이렇게 복원된 명사이십리에 기존의 지방도로를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로 이용하게 하고, 숙박시설이나 휴양시설을 하더라도 이 도로에서 내륙쪽으로 제한한다면 얼마나 멋진 생태관광지가 되겠는가! 주어진 천혜의 자연자원이 보물인줄 모르고 그렇게 망가뜨려가면서까지 수입을 늘이겠다는 영덕군 당국의 행위는 배고프다고 제살 깎아먹는 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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