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선<경주초등 교사>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귀가 아프다. 이러다 난청이 될 것 같다. 복도에선 배식당번들과 아이들의 신경전이 이어진다. 맛있는 것이 나오면 개수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먼저 배식 받은 아이들은 후딱 먹고 배식이 다 끝나기도 전에 추가 배식을 받으러 나온다.

도시락 뚜껑을 열며 ‘오늘 반찬은 무엇일까?’ 기대하던 그 점심시간은 아니다. 일년 내내 장아찌나 김치반찬으로 때웠다는 궁기어린 시대의 애환이 담긴 도시락도 아니다. 도시락 못 사와서 두레박의 우물물로 배를 채웠다는, 돌아보면 배고픔도 따뜻한 추억이 되는 그런 점심시간은 더더욱 아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여 정부지원급식비가 배당되는 시대로 탈바꿈하긴 했는데, 그 대상 찾아내는 것도 행정기관에 등재된 서류상의 자료에 의한 것이고 보면 교사의 역할이란 게 참으로 애매하다. 어떤 집은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자식 밥값은 낼 형편이 된다며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맹물과 검정보리밥으로 끼를 때우던 눈물 어린 도시락에서 영양가를 따져 잘 짜여진 웰빙 식단 시대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웃끼리 콩 한쪽도 알아서 나눠먹던 시대가 아니니, 강제 징수된 세금에 국가정책에 의해 저소득층 중식지원이 되고 있다. 제도가 생길 때마다 혼선이 따르기 마련이고 잡음도 끊이질 않는다.

도시락을 싸지 않으니 주부 입장에선 일거리가 줄어든 셈이긴 한 데, 아이들이 어려 밥 퍼주기가 되지 않으니 그게 또 말썽이다.

고학년은 그나마 숙달된 솜씨로 해결되는데 저학년 교실은 진풍경이 속출한다. 제도가 앞서가니 부족한 교육재정으로 뒷마무리가 되지 않아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진다. 그럴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악역을 하는 교사다.

교사가 아수라처럼 손이 여러 개도 아니고 보면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긴 한데, 재정 지원도 어렵고 자체 도우미도 구하기 어렵다면 옛날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억지를 부려본다. 엄마가 싸 주는 정성 어린 도시락으로 한 끼 해결하면 모든 문제는 깨끗이 해결된다고.

주부라고 하면 집안일만 하는 유휴노동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청소며 각종 봉사 활동에 차출된다. 그런데 요즘은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 대부분이 직업을 가졌거나 아르바이트를 한다. 일 가진 엄마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파출부를 불러 도우미를 대신했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니 문제는 문제다.

학교마다 넉넉지 않은 예산으로 살림살이를 하느라 숨 가쁘다. 학교 살림살이도 가정의 살림살이와 다를 바 없다. 수도세, 전기세 등 각종 공과금 비중도 무시 못 할 만큼 많이 새나간다. 바깥에선 초등학교 의무 교육이니 용역을 쓰라는 목소리가 높지만, 청소며 배식용역까지 감당할 만큼 넉넉한 살림살이가 아니다.

학교 담벼락에 ‘우리 학교는 불법 찬조금을 받지 않습니다’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인다. 교사는 이래저래 눈칫밥 먹고 산다. 학교에선 말썽 날까 학부모 눈치를 보며 고학년이 저학년 배식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제발 문제가 터지지 말아 달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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