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핵심’한국인 최초 유엔 전문기구 수장

“소리없이 순항한다.”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총장<사진>이 출퇴근과 업무활동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하이브릿드카(전기와 가솔린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차량)는 제네바의 주변 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린다. 행인들이 거의 눈치를 챌 수 없을 정도로 소음이 미약하다.
직원 9천700명, 연간 예산 14억달러의 거대 조직을 이끌고 있는 이 총장은 말을 마구 쏟아내기 보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형에 가까운 지도자다. 그리고 1년전 내건 공약을 차근차근 실천하는 ‘행동하는 핵심(核心)’으로 통한다.
취임 1년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종욱 총장을 WHO총장 집무실로 찾아가 한국인 최초로 유엔 전문기구의 수장으로 겪은 애환과 포부를 물어보았다.
다음은 이 총장과의 일문일답 요지.
-지난 1년간을 회고해 달라.
▲오랫동안 몸담았던 조직의 장이 된 것이 큰 보람이었다. 세계 보건 문제를 다루는 데서 생기는 책임도 무겁지만 나의 말과 행동이 즉각 정책에 반영된다는데서 보람을 느꼈다. 각오는 했지만 개인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것이 어려움이다.
-에이즈 퇴치사업(3 바이 5)은 잘되고 있는지.
▲에이즈가 처음 보고된 이후 20년간 각국이 예방에 역점을 둔 반면 치료에는 소홀히 한 감이 짙다. 황무지였던 만큼 우리가 앞장을 서야 했다. ‘3 바이 5’는 이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에이즈 치료는 복잡하고 끝이 없는 사업이다. 하지만 사업 목표는 달성 가능하다고 본다. 치료제와 자금 뿐만 아니라 각국에 적합한 관리 지침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 6개월간 이를 만드는데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신종전염병은 일단 무난히 넘긴 느낌인데.
▲올겨울이나 내년초에 신종전염병이 어떤 형태로 발생할지 알 수 없다. 다만 신속한 대응이 무엇보다 급선무다. 차기 사업연도의 신종전염병 대책예산을 1억 달러 증액할 계획이다. 예산을 투입해 이미 정보통제센터를 WHO본부에 만들고 있다. 8월에 완공된다. 조류독감 백신 개발은 진행중이다. 다만 개발에 어려움이 있다. 수요가 많지 않아 제약회사들의 관심이 적은 것이 문제다.
-소아마비의 연내 퇴치는 차질을 빚고 있다.
▲최후로 소아마비가 남아있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가 관건이다. 일부 지역에서 백신이 불임증을 유발한다는 낭설 때문에 예방접종을 하려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대통령과 주지사를 자주 설득하는 등 국제적 압력을 확대했다. 나이지리아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통에 일부 인접국들로 퍼지고 있는 형편이다.
-금연협약과 다이어트 전략은 성과가 있는가.
▲금연협약은 지난해 약 130개국이 서명했고 비준을 마친 국가는 현재 21개국이다. 채택은 됐지만 시행에는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리는 법이다. 담배값 인상은 바람직한 것이다. 담배는 독약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아일랜드, 노르웨이 등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전면금연을 실시하는등 강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다이어트 전략은 올바른 식생활 교육에 도움이 될 것이다. 구속력이 있는 협약으로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식품이나 주류 업계가 겁을 내고 있다.
-교통안전과 같은 분야에 손을 대는 까닭은.
▲교통안전은 경찰 소관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사망자 처리와 부상자 치료, 유가족 지원, 의료보험 등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공중 보건분야의 문제가 맞다. 교통안전은 의지의 문제다.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안전을 주지시키는 것은 단시간에 피해를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전세계적 캠페인이 필요하다. 한국도 국민적 자각과 정부의 홍보가 필요하다.
-한국인의 WHO 진출이 가시적이지 못하다
▲한국인 진출이 많으면 나도 좋다. 웹사이트를 통해 채용 공고를 자주 내고 있다. 최종후보자 명단에 오른다면 유심히 보겠다. WHO는 한국인을 더 채용할 여력이 있다. 다만 언어구사나 전문적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 그리고 다문화·다인종 사회를 즐기는 타입이어야 한다. 국수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제대로 적응하려면 극단적인 생각은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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