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우물-알영정

박혁거세가 알에서 깨어난 바로 그날 사량리에 있는 알영정 우물가에 계룡이 나타났다. 왼쪽갈비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나왔다.(혹은 용이 나타나 죽었는데 그 배를 가르고 여자아이를 얻었다고도 한다.) 처음 태어났을 때 얼굴과 용모는 매우 아름다웠으나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와 같았다. 사람들이 월성 북쪽에 있는 냇물에 목욕을 시켰더니 부리가 떨어졌다. 사람들이 이 아이가 나온 우물 이름을 따서 이름을 알영(閼英)이라고 했다. 박혁거세와 함께 남산 서쪽 기슭의 궁실에서 자라 13세가 되어 결혼하여 신라 최초의 왕비가 되었다.
왕비가 된 알영은 왕이 육부를 돌아다니며 위문하는데 왕비 알영도 따라가, 백성들에게 농사와 양잠을 장려하여 농토를 알뜰하게 이용하도록 하였다. 기원전 28년 낙랑의 군사들이 신라로 쳐들어왔다. 요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신라에서는 한 사람도 대항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집집마다 문은 열려 있고 도둑질하는 재미가 없었다.
낙랑군은 주막의 노파에게 술을 달라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노파는 술통을 내 놓으며,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낙랑군은 자신들이 무섭지 않냐고 묻자, 할머니는 신라에는 박혁거세거서간과 알영 왕비 두 성인이 계시어 농사와 양잠을 잘 지도하고 국민들이 화합하도록 잘 다스리기에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이 없기에 남의 곡식을 무엇 하러 훔치겠냐고 대답했다. 낙랑군은 크게 감동하였으며 신라가 도의 있는 나라임을 깨닫고 몰래 군사를 이끌고 와서 치려 한 것이 부끄러워 군사를 이끌고 다시 돌아갔다.
혁거세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왕이 73세 되던 해 9월 하늘이 어두워지며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지더니 큰 용 두 마리가 대궐 우물에 나타났다. 이틀 후, 알영 왕비의 정성스런 간호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3월 세상을 떠났다. 운명하자 이상하게도 시신이 공중으로 떠 하늘로 올라가고 홀로 남아 슬픔에 젖은 알영 왕비도 7일 후, 혁거세 뒤를 따라 세상을 뜨자 하늘에 올라갔던 시신이 땅에 떨어졌는데, 머리와 사지가 흩어져 나라 사람들이 한데 모아 장사를 지내려 하자 다시 큰 뱀이 나타나 방해했다. 옛 사람들은 뱀을 땅을 신령이라 믿고 뱀을 두려워하며 뱀이 시키는 대로 흩어진 곳에 각각 무덤을 만드니 오릉이 되었다. 옛날에는 오릉을 사릉이라 하여, 뱀 때문에 무덤이 5개가 되었다.
알영왕비는 혁거세왕과 탄생에서부터 성장, 결혼, 통치,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를 함께 하였다. 신라를 건국하고 신라의 사회제도를 확립하고 풍속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남편과 공평히 한 인물이었다. 어쩌면 이들 왕과 왕비는 두 사람의 몸을 한 하나의 완전체가 아니었을까.


▶알영정을 가려면 : 오릉 내 숭덕전 옆 관리실을 경유하여 들어가면 뒤쪽에 조그만 못이 있는데 이름하여 알영지(閼英池), 그 뒤에 알영정 우물터와 비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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