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000년경부터 치료법 연구해
민간요법보다 항문병 의학지식 홍보 절실

치질은 직립으로 생활하는 인류에게 있어서 그 역사와 함께 유래를 같이하는 가장 흔한 병고 중의 하나로 저속한 소문부터 격조 높은 문학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 여러 곳에서 기술되어 왔다.
서양의학사를 보게 되면 항문질환에 대해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과학적인 문서는 기원전 3000년 경에 쓰여진 ‘스미드 파피루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2250년 고대 히브리 시대 함무라비 법전, 기원전 1000년 경 인도의 수스루타의 저서, 기원전 400년 경 히포크라테스 시절의 기록은 물론 구약성경에까지도 묘사되어 있고 오늘날까지 항문병 치료법이 발전을 거듭해 왔는데도 이에 대한 치료법만큼 많은 질환은 드물 것이다.
고대 히브리인이나 이집트인들이 항문질환의 치료에 국소적으로 아카시아 잎이나 백반 같은 여러 약제를 사용하였고 이때부터 좌약이나 거머리 붙임 등 기타 비수술적 방법들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460년에 태어나서 104세까지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의학의 성인 ‘히포크라테스’는 그의 저서에서 치루, 항문주위농양과 치핵에 대한 훌륭한 수술을 기술하였는데, 그가 처음으로 배액선을 사용하여 치루절개를 하였던 그 당시의 치료의 원칙은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오고 있다.
14세기 영국사람 ‘죤 아던니’의 치루에 관한 가장 높은 수준의 논문이 대영박물관에 현존하고 있다. 그의 환자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부자와 가문이 좋은 영국 사람들이었고 치료비는 그 시대에 가장 높았는데, 치루를 치료해서 완치되면 존경받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는 100마르크 또는 40파운드를 받고 일생동안 매년 예복과 100실링의 돈을 받았다고 한다.
17세기의 외과의사 ‘필릭스’는 1686년 프랑스 황제 루이 14세의 만성치루를 수술하여 성공적으로 치유시켜서 상으로 농장과 작위 등 많은 보상을 받았다.
19세기는 ‘프레데릭 살몬’ 등 저명한 외과 의사들에 의해서 항문학이 탄생된 시기로 여러 가지 항문수술방법이 소개되었다.
1871년 미국의 ‘미첼’이 처음으로 치핵 전체를 부식시킬 목적으로 95% 석탄산을 사용하여 주사요법의 선구자가 되었는데, 이때부터 많은 무자격 보따리 치핵 치료사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1968년 대한대장항문학회가 창립된 후 눈부신 발전을 하여 현재 우리나라 대장항문의학이 선진국 미국, 영국, 일본의 수준에 도달하였다. 아직도 민간요법의 폐단에 대한 대국민 계몽과 항문병에 대한 의학지식의 홍보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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