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거의 무관심해왔던 법의학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구 ‘개구리소년’ 사건에서 유골들의 신원을 밝혀낸 것도 법의학자들에 의한 DNA검사 덕분이었다. 이번 대구지하철참사에서 법의학자들은 결정적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들이 없었다면 신원을 밝혀내지 못한 유해가 상당히 많았을 것은 물론이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너무나 엄청난 사고였고, 너무 참혹한 참변이어서 아직 사망자를 다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유해와 유품이 철저히 타버린 경우에는 현대과학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의학자들의 수가 우리나라에는 너무 적어 분석을 끝내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현재 법의학자는 과학수사연구소에 있는 전문인력외에는 그 수가 너무 미미하다. 서울대에 3명, 경북대에 3명, 연세대에 2명, 전남대 1명, 전북대 1명이 고작이다. 이 인력으로는 대구지하철같은 대형참사에서의 과학수사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법의학적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사망사건에 대한 부검도 철저히 할 수 없을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2000년의 통계에 의하면 의문사 6만여건중에서 부검을 실시한 경우는 6.3%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의 55%, 일본의 30%에 비해 너무나 뒤떨어진 수치이다. 대구 경북에서 경찰에 접수된 변사사건은 연간 1천800여건이지만 부검이 이뤄지는 것은 300여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의문사가 자연사로 간주돼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법의학은 미궁에 빠질뻔한 사건을 명쾌히 풀어주고, 억울한 죄를 덮어쓴 사람을 구해주는 일도 한다. 어떤 여성이 형부의 성폭행을 피하려고 그를 밀어 넘어트리고 도망갔는데, 그 형부가 사망하고 말았다. 그 여성은 과실치사혐의로 구속됐는데. 법의학자들이 부검을 한 결과 “형부의 사망은 지병인 뇌동맥류에 의한 뇌출혈이며, 외부충격과는 관련 없음”을 밝혀내 그 여성의 혐의를 벗겨준 일도 있었다.
사체를 다루는 험한 일에 의학도들이 매력을 느끼기는 어렵겠지만, 그러나 일하는 보람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여러가지 인센티브를 주어 법의학자를 더 많이 양성할 정부적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그리고 ‘사체처리에 관련된 법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개구리소년’ 유해발굴때와 같이 이번 대구지하철 사고에서 가장 큰 실수는 현장을 훼손한 것인데, 1차적인 사고현장 보존권한과 책임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넘기는 방안도 심도 있게 연구하는 등 법의학체계에 대한 전반적 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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