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조계종 전종정 서암스님의 입적을 앞두고 측근들이 “스님께서 입적하시고 나서 사람들이 열반송을 물으면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으니 “나는 그런거 없다”라고 했다. “그래도 한 평생 사시고 남기실 말씀이 없습니까?” 하자 그래도 “할 말 없다”라고 했다.
“그래도 누가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요?”라고 하자 “ 달리 할 말이 없다.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얼마전 새 행정부 각료 중 유일하게 인선이 늦어진 교육부총리 자리를 두고 이런저런 인물들이 거명 되고 있을 때 어느 대학교수가 쓴 신문 칼럼에 공자와 예수가 교육부총리로 나섰는데 인성교육측면과 서양사회에 미친 영향력으로 볼 때 둘 다 손색 없는 인물이란 여론인데 조금 있으려니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항의 소동이 벌어졌다.
부처가 왜 후보에서 빠졌느냐? 공자, 예수 모두 병역 미필자 아니냐? 예수는 자식 키워본 경험도 없는데 어떻게 교육을 책임 지울 수 있겠나? 공자는 서당교육만 강조할텐데 학부형들의 늘어나는 사교육비 부담을 어떻게 하겠느냐? 등 논쟁이 붙은 것이다. 이처럼 아이러니한 두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원래 우리 나라는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못해 위계질서에 의한 웃사람 말의 위력이 대단했다.
3공시절 대통령께서 열차로 부근을 지나치면서 당신의 숙원사업으로 설립한 대학교가 어디 있나?고 물으니 비서가 “저 쪽 입니다.”하고 가리키는 쪽을 보면서 “잘 안 보인다”고 한 말 한마디에 캠퍼스의 한가운데에 22층 도서관이, 그것도 초고속으로 세워졌다는 일화가 있다.
사실여부야 어찌되었든 앞자리에선 한사람의 말 한마디 위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TV를 통해 비춰지는 노사협의회가 으레 한쪽은 넥타이에 양복차림이고, 다른 쪽은 붉은 머리띠에 점퍼차림으로 갈라져서 자존심의 대결장이 되어 서로 삿대질이다.
그런가하면 국회의사당 안의 모습도 역시 마찬가지다. 남의 말을 들으려 들지도 않고 내주장만으로 상대를 압도하려는 자세를 우리는 자주 보아서 눈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요즘은 전자신문, 인터넷 등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등장으로 무질서하게 오가는 언어폭력이 사람들의 판단을 더욱 흐리게 하고 있다. 성폭력사건, 어느 교장선생님의 자살사건 등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로 진실이 뭔가를 알고 싶어지게 한다.
이런 현상으로 미루어 오늘날의 사회가 온통 양심 불감증 내지는 가치기준이 혼돈 된 아노미현상에 빠져 있다고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다행히 새 정부에서는 토론으로 의견수렴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무척 다행스럽다는 생각이다. 아무쪼록 남의 말을 들으면서 “네, 맞습니다. 맞고요.”를 되풀이 할 수 있는 풍토가 지금우리에겐 아쉽다.
김 교 환<경북 예천교육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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