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일보의 창간 14주년을 축하한다.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뜨거운 박수와 격려를 함께 보낸다. 많은 지역신문 중에서도 가장 강한 생명력을 과시했으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양을 일구었고, 올바른 정론을 펼치기 위해 숨은 노력들이 짐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와 견해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포항의 척박한 문화풍토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일간신문을 창간하여 뿌리 깊은 거목으로 키운 것은 큰 업적이다. 또한 이런 선구자적 정신들이 포항시민들의 문화적 자부심을 대변해온 점도 사실이다.
언론을 생각할 때마다 늘 연상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미국의 양심으로 일컬어지는 노암 촘스키다. 뉴욕 타임스가 ‘생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으로 손꼽은 그는 원래 전공이 생성문법이론으로 언어학의 한 획을 그은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세상의 왜곡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뜨거운 정열을 거침없이 불살라온 외골수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온갖 편견과 음모와 거짓으로 얼룩진 미국의 지식인사회와 지배권력의 심장을 후벼대는 그의 야유와 독설은 나이를 먹을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어떤 비난과 질시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를 비난하는 자들은 대개 타락한 지배권력의 주류이거나 그들에 기생하여 먹고사는 추락한 먹물(?)들이라고 일축했다. ‘66년 그는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 하며 온갖 정책 속에 감추어진 왜곡된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와 대기업이 야합하고 권력과 지식인의 유착에서 오는 검은 비리를 폭로하며, 다국적기업의 횡포 등 세계질서의 야만성과 이중적인 얼굴들을 깊숙이 도려내어 고발했다.
흔히 신문을 일컬어 ‘사회의 목탁’이라 하고 언론인은 ‘무관의 제왕’으로 군림한다. 촘스키가 말한 지식인의 대표적인 반열에 서있는 자가 그들이고, 신문은 사회여론의 강력한 대변자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이 다 썩어도 언론이 부패하지 않아야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동아줄이 남는다.
오늘 창간 14주년을 맞는 경북일보가 앞으로도 변함없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다음 몇 가지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첫째, 촘스키의 양심과 대쪽같은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가 썩은 미국을 비판하고 있는 이상으로 우리 정부나 지도층은 더욱 부패했고 추락한 먹물들이 더 많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간신문을 읽는 독자들에게 굴절되지 않은 정보와 사심 없는 정필로 바람직한 여론형성을 주도했으면 한다.
둘째, 신문은 우리사회의 거울이다. 일상적인 타락과 범죄, 지도층의 비리와 추악한 치부를 들추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는 기사들도 많았으면 한다. 숨은 미담이나 묵묵히 일하는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이야기들이 훨씬 더 감동적이다. 선정적인 기사, 대안 없는 편들기, 범죄수법의 지나친 리얼리티, 과장광고들이 정제되어야 애독자들이 늘어날 것이다.
셋째 신문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이미지에 먹칠을 한다. 그게 다 업보(業報)이다. 신문 잡지는 거짓말의 소굴이라고 누군가 빈정거렸다. 한술 더 떠서 신문은 사상의 무덤이라고 혹평한 사람도 있고 가장 비열한 것이 신문잡지의 포악이라고 막말을 한 자도 있다. 왜곡된 보도와 권력에 빌붙은 곡필(曲筆)이 화근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토머스 제퍼슨의 명언인 ‘나는 정부가 있더라도 신문이 없는 나라에서 사느니 보다 차라리 정부가 없어도 신문이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극찬을 기억한다.
경북일보가 이런 찬사를 받는 신문으로 도약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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